마을의 변곡점
마을의 변곡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0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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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의 결별은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했던가. 낯선 골목으로의 변화와 테마라고 부르는 덧대어진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이 마냥 편안하게 다가오기까지는 얼마의 시간과 몇 차례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까….

문득, 익숙한 거리에서 낯설게 다가오는 향기와 눈앞에 펼쳐지는 색상들 사이 촘촘히 들어앉은 변화는 새로운 일상을 들여놓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종종 마을 길목에 가림막이 쳐지고 낯선 이들이 중장비를 갖추고 찾아든다. 길지 않은 기간에 걸쳐 유난스런 치장을 마치고 나타난 외양들은 기존의 마을 분위기와 사뭇 달라야 하는 임무를 띤다.

마치 이 마을은 본래 이러했어야 하다는 듯 기세등등한 위엄까지 치장에 담았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프렌차이즈 카페가 생겨나거나 나름대로 이름표를 제대로 단 외식업 하나쯤은 들어앉게 마련이다. 그도 아니면 외래어의 조합으로 된 간판이나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 하나 정도는 내어 건 미용실 또는 잡화전문점이 들어온다. 적어도 길목이라고 불리었던 곳에 서면 흔히 목격되는 도심 마을에서의 풍경들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곳도 입주할 5년여 전 당시만 해도 마을 모습이 아파트 하나를 두고 앞과 뒤가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긴 가로수와 잘 정돈된 형형색색의 조경들이 건물 앞 풍경이라면, 세월을 이고 진 연륜이 켜켜이 쌓인 옥상들과 어정쩡한 가르마를 탄 듯 긴 골목길들, 그 위로 내려앉은 우리들 일상 같은 전선줄들이 집들을 에워싼 모습이 마을 뒤편의 풍경이었다. 낮 시간 집에 머무는 휴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시원시원한 대로변이 아닌 골목길이 잘 내려다보이는 뒤쪽 베란다에 앉아 연륜 쌓인 옥상들과 골목길을 보는 게 따뜻하고 편안했다.

어릴 적 골목에서 뛰어놀던 기억 때문인지, 집집이 저녁 먹으라고 불러대던 가물가물한 이름들 때문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마을공동체를 통한 마을기업을 우리 지역에서도 좋은 선진사례로 만들어 보겠다고 호기롭게 이 영역에 발을 디딘 6년여 우여곡절의 시간 때문인지…. 단언컨대, 어느 것 하나 때문만은 아닐 테니 여러 가지가 적절하게 고루 섞인 덕분이리라 생각한다.

어찌됐든 문득 마을을 걷고 싶어질 때가 있다. 휴일에는 뒤편의 골목길을 걸으며 바뀌어 가는 상점과 낮은 담장 사이로 수목의 변화로 계절을 보고 평일 퇴근이 이른 날엔 앞 편의 도심을 걸어본다.

최근에 길목이라 불리었던 사거리 혹은 삼거리 교차로의 집들이 상당히 바뀐 것을 바로 알아챈 것도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한 호기심으로 골목길을 배회하던 습관 덕분이다.

오랜 기간 주거지와 그 주거지를 둘러싼 이웃과 상점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사람의 집 사이로 낯선 이들이 가림막을 들고 오면 이전보다 훨씬 웅장한 규모의 건물들이 나타난다.

마을의 모습이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 채 혹은 두세 채의 집들이 사라지면 그 가구 수 만큼의 주민들이 나가고 다시 들어와야 하는데 뒤편의 길목에는 주민은 사라지고 사업자만 든다. 당연히 거주지는 불분명하다. 애초에 ‘주민이 곧 마을’이 되는 곳으로 치장한 곳이 아니기에. 본래의 주민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내심 궁금해진다.

길목이 아닌 뒤편 골목의 변화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두세 채의 집이 한 채로 치장하는 날 그곳에는 두세 가구의 주민들이 나갔는데 각각의 몇 십 가구가 든다. 그들은 주민인데 마을이 되고자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든다. 이주가 잦은 특성들을 담은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마을의 변화, 그 모습 속에 주민은 어떠한 모습으로 함께여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주민이 마을이고, 마을이 곧 주민이다. 마을생태계와 마을공동체성은 불가분의 관계여서 마을에서의 삶과 일과 일상의 공유가 자연스러운 변곡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을에서 공유되는 공간과 공유하는 일상은 주민 모두의 삶의 질을 올리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박가령 울산경제진흥원 마을기업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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