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의 이노베이션(innovation)
불가의 이노베이션(innovation)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0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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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화엄산림’은 올해 46회째다. 1971년부터 매년 음력 11월 한 달 동안 화엄경을 중심으로 불자와 영가를 위해 법문을 설하는 불사다. 한편 산림에는 상세선망(上世先亡) 사존부모(師尊父母) 다생사장(多生師長) 누대종친(累代宗親) 제형숙백(弟兄叔伯) 자매질손(姉妹姪孫) 원근친척(遠近親戚) 등 천도할 영가도 접수한다.

영가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분가루 인(因)에 부모 등 뭇 연(緣)이 함께한 것이 다시 돌아가는 이름이다. 화엄산림은 산자와 영가가 시간을 초월해서 같은 공간에서 법문을 듣는 것으로 특별한 기간이라 말할 수 있다. 30일간의 산림이 끝나는 날 사부대중은 변화의 법희충만으로 환희용약하며, 더불어 영가는 고통을 잊고 낙을 얻어 천도시킨다.

강위의 나룻배로 날 되돌아가게 해주오/ 난 가야만 해. 강을 따라 가야 해./ 강위의 나룻배로 날 다시 데려가 주오./ 그러면 더는 울지 않으리니. (Boat on The River/Styx) 미국의 시카고 출신 5인조 남성 록보컬 스틱스(Styx)가 부른 노래다. ‘저승의 강’으로 번역했다. 가사 내용에서도 죽음의 느낌을 풍기지만 스틱스라는 그룹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스틱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망자가 건너는 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들이 쌓였는데도/ 한마디 말 못하고 헤어지는 당신을/ 이제 와서 붙잡아도 소용없는 일인데/ 구름 저 멀리 사라져간/ 당신을 못 잊어 애태우며…. (공항의 이별/문주란) 1974년 박춘석 사단의 일원인 문주란이 부른 노래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연인과 헤어지는 내용의 가사지만 죽음과 연결시키면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귀촉도 일부/서정주)로 연결될 수 있다. 사별한 임을 보내는 애절한 감정으로 느낄 수도 있겠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는 강을 배로 건너간다고 한다. 그 강의 이름이 스틱스(Styx)강 혹은 아케론(Acheron)강이다. 배는 소가죽으로 만들었는데 배 바닥이 없다. 뱃사공의 이름은 카론(Charon)이며 노인이다. 카론은 산 사람은 절대로 태워주지 않으며 반드시 죽은 사람만 태워 건네다 준다. 뱃삯은 꼭 받으며 죽은 사람이라도 뱃삯이 없으면 타지도 못하지만 태워 주지도 않는다. 돈이 없거나 미처 뱃삯을 장만하지 못한 망령들이 나루에서 떠돌며 울고 있다고 한다.

속가(俗家)에서는 사람의 주검을 행상(行喪)에 태워 묘지로 옮긴다. 도중에 다리를 만나면 행상을 잠시 멈추어 노제(路祭)를 지낸다. 이때 상주들과 조문객은 노젯상에 노잣돈을 얹어준다. 다리가 강의 역할을 대신하며 상두꾼이 뱃사공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민속의 천도 굿에서는 굿 끝에 죽은 사람의 넋전을 용의 머리 모양으로 장식한 용선(龍船)에 태워서 좋은 곳으로 보낸다. 이를 배송(拜送)이라 부른다. 굿이 끝날 즈음 길고 흰 천 위에 용선을 띄운다. 이때 당갓집(當家)에서는 돈을 걸거나 넣어준다. 무당이 뱃사공 역할을 맡는데 돈은 망자의 뱃삯인 셈이다.

유가(儒家)에서는 주검을 염할 때 망자의 입에 쌀, 돈, 옥 등을 물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재료에 따라 반함(飯含), 전함(錢含), 옥함(玉含) 등으로 부른다. 이러한 의식은 망자가 숙명적으로 건너야 할 삼도천(三途川), 유사강(流沙江), 황천강(黃泉江) 등 저승으로 건너갈 때 사공에게 건네는 뱃삯인 셈이다. 쌀과 돈 그리고 옥은 환금성(換金性)이란 공통점이 있다. 중국 호북성 무한의 호북성박물관 전시품 중에 보이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제후 증후을(曾侯乙)의 입에 물린 옥함(玉含)도 뱃삯인 셈이다.

영가천도에서 극락세계로 모시는 의식을 봉송(奉送)이라 부른다. 받들어 보낸다는 상징적 의미다. 주로 반야용선으로 보낸다. 배 중앙에는 인로왕보살이 여러 층으로 된 보개(寶蓋·華蓋-울산에서는 ‘헛개’ 혹은 ‘허개’로 부름)를 직접 손으로 잡고 서 있으며, 뱃전에는 관음보살이 선미에는 지장보살이 전후를 호위하며 강을 건넌다. 이러한 내용을 세밀하게 그린 그림은 사찰의 극락전 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화엄산림의 중심은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아 끊임없이 변화(變化)를 추구(追求)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도사의 화엄산림 운영과 영가천도 의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시대적으로 진화·변화하여 차별화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가 않다.

화엄법회는 시의적 비유와 실천으로 생활불교가 되어야 한다. 영가천도 재 의식은 복잡성과 반복성의 형식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화엄산림과 영가천도 모두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안주하면 동참자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가중시켜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그 결과 시대적으로 지속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불교 또한 시대적·시의적으로 변화는 생물이기에 반드시 이노베이션(innovation,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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