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그리고 ‘조율’
12월 3일, 그리고 ‘조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0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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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여섯 번째 촛불집회가 달아오르던 12월 3일 오후 4시 즈음, 남구 삼산동 롯데백화점 울산점 앞마당에도 촛불집회의 불씨가 서서히 굵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푸근한 날씨여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거라 했지만 집회의 초장(初場)은 그러나 썰렁해 보이기까지 했다. 북적거리기 시작한 것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사방에 어둠이 깔린 오후 6시 무렵,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앞자리, 가운데자리를 향해 부탁의 말을 건넸다. “더 많은 분들이 앉으실 수 있게 다 같이 일어나 차도 쪽으로 자리를 넓혀 주십시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도 점령이 시작됐다. 좌회전 차선을 합쳐 6개 차선을 이룬 한 쪽 차로의 3분의 2, 즉 4개 차선을 촛불들이 차지했다. 2개 차선만 허용되던 2주 전과는 전혀 딴판인 것은 촛불의 위력 때문이었을까?

경찰이 제지하지 않는 게 신기했다. 낯익은 정보형사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이내 답이 돌아왔다. “참가자 수를 보아가면서 조금씩 양보해 주기로 약속이 돼 있어섭니다.” 집회 주최 측과 경찰 사이에 미리 조율이 돼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조율(調律)’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두 가지 뜻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의견 따위를 알맞게 맞춤’이었다.

조율은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있었다. 울산 쪽 조율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아니 대단한 감동이었다. 서울 쪽 ‘조율’의 뚜껑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60줄에 접어든 가수 한영애가 열었다. 1백 수십 만 촛불 앞에서 한영애는 서유석이 부른 ‘홀로 아리랑’과 자신이 부른 ‘조율’ 등 네 곡을 그녀 특유의 허스키보이스로 소화해 냈다. 노래들은 ‘국정 논단’ 시국과 맞물려 듣는 이들의 가슴속을 파헤치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 드높았던 파란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마지막 가꾸었던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고립은 위로로 충동이 인내로/ 모두 함께 손잡는다면/ 서성대는 외로운 그림자들/ 편안한 마음 서로 나눌 수 있을 텐데//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한영애는 노래 마지막 노랫말-”조율 한 번 해주세요”를 “조율 한번 해냅시다”로 바꿔 부르며 촛불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또 집회 전날(2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도 올렸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쓰러지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 이들이 있기에 존재합니다. 이 땅의 아이들도 먼 훗날 그런 생각을 하게끔 우리 모두 버텨야겠죠. 제발 조율 한번 해주세요. 12월 3일 광화문에 노래기도 하러 갑니다.” 이날 광화문 촛불 무대에 오른 그녀는 “여러분 지치지 마십시오. 천 년의 어둠도 촛불 하나로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라며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우리의 촛불이 또 다른 민주의 역사를 쓰는 새로운 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도 남겼다.

‘예쁜 말’만 골라서 한 덕분일까? 한영애가 ‘조율’을 부른 직후, SNS에는 폭발적 반응이 불꽃으로 타올랐다. SNS 마니아들은 “역시 국민가수!”, “이토록 멋있게 나이 들다니 감동이다” “’소리의 마녀’ 한영애 최고”라는 극찬으로 그녀의 말과 노래에 화답했다. ‘빨갱이’ ‘사탄의 세력’ 소리를 했다가 코너로 몰린 가수 윤복희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윤복희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에 “내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 주소서”라는 글을 올려 스스로 논란을 부른 바 있다. 뒤늦게 해명까지 했지만 한 번 돌아선 민심은 그녀를 줄곧 외면하는 모양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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