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風磬)에 숨어있는 또 다른 의미
풍경소리(風磬)에 숨어있는 또 다른 의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1.2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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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가곡, 성불사의 밤)란 노랫말은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를 상상하게 한다. 사찰 전각의 네 모퉁이에는 왜 풍경을 운치, 장엄, 장식으로 달았을까.

절기 입동(立冬)이 지나면서 날씨가 건조하고 기온이 점차 내려가 쌀쌀해졌다. 온혈동물인 사람은 체감온도가 낮아져 모닥불, 히터 등 다양한 수단으로 따뜻함을 구하게 된다.

불은 물질을 태우는 속성으로 빛과 따뜻함을 발산한다. 생활과 산업 등에서 인위적으로 불을 활용하지만 예방하지 못한 불은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피해를 크게 입히게 된다. 화재로 인해 손실을 체험한 사람이 오죽했으면 불을 마귀에 비유하여 화마(火魔)라 불렀을까.

불이 나지 않게 사전에 유비무환 차원에서 예방하는 것을 화재예방이라 한다. 겨울철이기에 더욱 강조해야 하는 이유이다. 계절에 따른 소방차의 출동 횟수에 관한 데이터를 구태여 제시하지 않아도 여름철보다 겨울철에 소방차 사이렌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그만큼 불의 이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화엄경>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에 보면 근수(勤首)보살이 문수보살의 질문을 받고 불의 속성에 대해 몇 가지 비유로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첫째,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구함에 불붙기 전에 자주 쉰다면 불기운도 따라서 없어진다.(如鑽燧求火 未出而數息 火勢隨止滅) 둘째, 어떤 사람이 일주를 들고 깃으로 햇빛을 받지 않으면 불은 끝내 얻지 못한다.(如人持日珠 不以物承影 火終不可得) 셋째, 작은 불에 쏘시개도 젖으면 잘 꺼진다.(如微少火 樵濕速令滅) 넷째, 겁화가 일어날 적에 적은 물을 끼얹어 끄려 한다.(如劫火起 欲以少水滅)

첫째와 둘째의 비유는 불을 얻으려면 나무를 서로 마찰시키거나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셋째와 넷째의 비유는 불을 끄려면 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비유를 인용한 것은 불의 천적 혹은 포식자가 물이란 사실을 밝히려 한 때문이다.

화재에 절대 자유롭지 못한 건축물에는 사찰도 해당된다. 절간은 불교 수행자가 예경 대상을 모시면서 거처하는 곳이다. 불교 전통 예경에는 반드시 등(燈) 공양을 올리는데 일반적으로 촛불이다. 연등으로도 부르는 촛불은 불보살 전에 올리는 예경물로 육법공양물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될 만큼 전통적으로 의미가 있다.

불을 밝히는 종교적 의미는 어둠으로 상징되는 어리석음의 대상인 중생을 지혜의 상징인 빛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의 등불은 도량에서 4계절, 24시간 허락한다. 그만큼 화재의 가능성도 높다.

과거나 현재를 막론하고 사찰을 창건(創建), 중건(重建), 중수(重修)하는 것은 쉽지 않은 불사(佛事)이다. 불교 수행자가 오랜 기간 어렵게 건립한 전각(殿閣)이나 요사(寮舍)가 화마로 소멸된다면 가슴 아픈 일이다. 수행자도 철저하고 지속적인 반복교육으로 화재예방에 힘써야 되는 까닭이다.

풍경(風磬)에서 화재예방의 비보를 찾아본다. 풍경은 건물의 네 모퉁이에 달아 바람에 의해 울리게 되는 장엄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풍경은 시어(詩語)로도 편하게 사용된다. 현대사회에서 ‘그윽한 풍경소리’는 마음을 치유하는 데도 한 몫 하리라 생각한다.

반면 불교 수행자에게 풍경소리는 세속적 느낌도 있으나 다른 점을 감추고 있다.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행동을 경책하며, 수도에 게으름을 피우는 등 수행에 방해가 되는 모든 행동을 깨우치는 본보기로 비유된다.

풍경에 물고기 모양을 달아두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잠을 줄이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인식하고 있다.

풍경을 화재예방 차원의 비보적(裨補的-좀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을 도와서 채우는 것)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밖에서 화마를 퇴치하는 파수꾼이다. 수행자는 어렵게 건립한 전각을 화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생 동식물을 물로 인식시켜 범접을 못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행자는 사찰의 창건과 수호에서 화재예방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배산임수로 창건해 방화수를 준비하고, 전각 가까이 연못을 파서 소방 물을 확보하는 등 실제적으로 준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용마루의 치미, 네 모퉁이 풍경의 물고기, 대들보의 용과 학, 벽화의 백로, 해오라기, 수련, 연꽃, 게, 자라, 거북, 두꺼비 등 수생 동식물을 다양하게 그려 비보로서 화재를 예방하고 있다. 결국 풍경의 물고기는 물인 셈이다. 화마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물고기가 몸을 흔들면서 내는 수신(水神)의 풍경소리인 것이다. 안과 밖에 화재예방 비보를 한 셈이다.

풍경(風磬)에는 목재 건축물을 화마로부터 보호하려는 수행자의 종교적 비보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재는 불을 다루는 곳에서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화재를 구태여 경험할 필요는 없다. 불은 통제될 때 유용하지만 방임하면 혼돈으로 재해만 있을 뿐이다. 불조심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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