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매(觸媒) 같은 삶
촉매(觸媒) 같은 삶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1.2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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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용어 중에 ‘촉매(catalyst)’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에게도 비교적 많이 알려졌고 쉽게 생활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과학 지식이 없더라도 촉매란 어떤 일이 좀 더 쉽고 빠르게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비누가 생활필수품이 되기 전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기름 먹은 빨랫감을 양잿물에 담가두었다가 때를 빼곤 했다. 그냥 맹물로 기름때를 빼는 것은 여자들의 큰 일거리이자 골칫거리였다. 생활필수품이 된 비누는 때를 빼는 촉매 역할을 한다. 비누가 물속에서 옷에 묻은 기름을 녹여내서 때를 빠지게 하는 원리이다. 이때 비누는 기름과 잘 어울리는 친유기와 물과 잘 어울리는 친수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 물과 기름 모두에게 환영 받는 물질로 작용한다.

비누의 주성분은 지방산인데 카르복실기의 말단에 붙어 물과 잘 어울리는 부분은 나트륨이나 칼륨 같은 알칼리 금속과 결합되고, 또한 다른 한쪽은 기름(지방)을 이루는 탄화수소화합물로 구성되어 있다.

비누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옛날 어른들이 양잿물이라고 하는 가성소다(요즘 교과서에는 수산화나트륨이라고 한다)와 동식물의 기름을 섞고 온도를 높여 저은 다음 일정한 틀에서 냉각·응고시킨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비누이다. 요즘은 일반인들도 가정에서 취향에 맞는 향을 첨가시켜 다양한 형태의 수제 비누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이처럼 한 분자에 친수성(hydrophilic) 및 소수성(hydrophobic) 기를 양쪽에 붙이고 있어서 물과 기름에 다 잘 녹을 수 있는 것이 비누이다. 비누는 이런 원리 덕분에 기름때를 잘 지울 수가 있다. 때를 제거하는 입장에서는 비누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겠지만 물과 기름의 입장에서는 물도 아니고 기름도 아닌 어중간한 성질을 가진 물질이라고 배척당할 수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양쪽에서 모두 거부할 수는 없는 비누의 매력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며칠 전에 우리나라 철학의 대중화를 이끈 김형석 선생님의 회고록과 같은 ‘100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읽었다. 흑과 백만 존재하는 시대에 산 사람은 시대의 희생양이지만 회색지대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아쉬움을 표한 노 철학자의 말씀이 새삼 기억에 남는다.

이솝 우화에 박쥐에 관한 글이 있다. 날짐승의 편에 설까 들짐승의 편에 설까 자신의 유익을 재다가 어느 편에도 들지 못하는 신세를 가리키는 우화이다. 자리와 일신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도모한다면 박쥐가 될 것이고 모두를 위한다면 비누와 같은 촉매가 될 것이다.

촉매의 과학적 정의는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반응속도에 변화를 주는 물질’이다. 이 세상 운송연료의 90%, 모든 화학물질의 80% 이상이 촉매반응을 통해 제조되고 있다. 촉매는 자신이 바뀌지 않을 뿐 아니라 사용되기 전에 원하던 반응생성물을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단지 속도를 조절하고 에너지가 덜 쓰이게 하는 유익만을 가져올 뿐이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의 배기가스통 끝부분에는 촉매통이 부착되어 있어 대기 중에 배출되는 유해물질을 덜 유해한 물질로 전환시켜 준다. 또 요즘 많이 알려져 있는 수소연료전지는 대기 중의 산소와 수소가 백금촉매 표면에서 반응해 전기와 열을 만들어낸다. 백금은 금이나 은보다 몇 배 높은 효율을 내기에 그 반응에 필요한 선택적인 촉매반응을 한다.

모든 반응에는 그에 합당한 촉매가 필요하다. 수소와 산소가 반응해 전기와 열을 얻는데 백금보다 비싼 다이아몬드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촉매의 선택과 사용방법은 그래서 기술이고 노하우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지친 삶에 활력이 될 수 있는 상황과 사람이 있다면 그는 촉매와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좋은 촉매는 이해와 관용과 사랑이고, 일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좋은 촉매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될 수 있듯이 적절한 촉매의 선정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살다보면 내게 촉매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나도 남의 촉매가 될 수 있는데 무관심과 게으름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직무태만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에 공의롭고 성실히 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결과를 바꾸려하지 않고 반응환경을 조성하고 상대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촉매의 역할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촉매의 삶을 살아가길 기원한다.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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