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향 속의 도시
커피향 속의 도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1.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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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휴일 아파트 속 공원을 걸어본다. 어젯밤 비가 왔는지 낙엽이 촉촉이 젖어있다. 샛노란 은행잎도 소복이 쌓여있어 차마 밟고 가기가 조심스럽다. 그냥 보기만 해도 좋으련만 한편으론 외로움마저 든다. 분명 가을은 고독의 계절인가 보다.

행복을 위하여 삶의 지혜를 잘 이야기하는 철학자 A.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사교는 사교가 좋아서가 아니라 고독이 두려워서다’라 했다. 이러한 고독감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뭔지 나름대로 숙고해 본다.

적당한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고 커피향 가득한 곳이라면 고독감도 해소되고 건강을 위하고 일거양덕일 거다. 그곳은 집에서 출발하여 30여분 걸을 수 있고 재즈 음악이 조용히 흐르는 분위기 좋은 도시 속 ‘명품카페’다. 요즈음 커피전문점은 아예 책 읽는 공간이 되어 버린 소위 도서관이나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지금은 건강을 최고로 생각하는 백세시대라 건강정보도 철철 넘친다. 심지어 ‘나’까지 의학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최근 ‘걸어 다니면서’ 궁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다름 아닌 여러 형태의 걷기 방법을 하나하나 테스트해 보면서 내 몸에 맞는 좋은 건강법을 찾아보는 일이다.

인간의 질병은 대부분 양팔과 양다리 그리고 허리 쪽에서 일어나는 질환이다. 오른팔을 들고 경사지게 흔들면서 발걸음에 박자를 맞추어 걸어본다. 그 다음 왼팔도 같은 방법으로 해본다. 나아가 양팔을 180도 위 아래로 반복하면서 걷는 것인데 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그다지 상관할 필요는 없다. 어느새 어깨, 팔, 다리, 허리는 혈액순환의 효능을 크게 보게 되고 통증도 자연스레 소멸되는 것이다.

이 명품카페 주위에는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대형 병원이 인접해 있어 도시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또한 주위에는 공교롭게 최근 오픈한 대형 서점도 자리 잡고 있다. 거기에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비롯해 소설, 시, 수필 등에 관한 양서들이 즐비하게 꽂혀있다. 음식, 휴게, 의류, 영화 등과 더불어 있는 최신 독일식 복합문화공간인 셈이다. 이렇게 도시야말로 우리에게 최대한 현대적 감각과 편리성을 주어 한껏 친근감을 더해 주고 있으니 실용적인 도시이며 문명의 도시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이곳은 외로이 고군분투했던 연구실보다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상(像)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어서 후련한 기분마저 든다. 커피냄새 구수하고 아름다운 재즈음악이 경쾌하게 흐르는 멋진 마음의 보고(寶庫)를 가졌으니 이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커피향 가득한 대형 창틀 안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것을 다 갖춘 거나 다름이 없다.

창밖의 인간들을 보라! 한편의 주인공들이 제각기 오가며 살아가는 형상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등가방을 메고 바삐 걸어가는 학생. 또 뚱뚱한 여자가 걸어가는가 하면 날씬한 여성도 거닌다. 저기 가로수 나무 밑에는 여송연(呂宋煙) 입에 물고 서성이는 중년의 아저씨도 보인다. 그것뿐인가 종점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버스 안의 승객들의 모습은 어떤가? 저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비온 후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늦가을, 인도 위에 누런 낙엽은 수두룩 흐트러져 있는데 무심히 뒹굴고 있는 플라타너스 큰 잎사귀는 그저 스산해 보인다.

우리는 늘 한적한 전원 속 삶을 동경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보다 역동적이며 조용한 도시의 삶이 더욱 편리하고 생동감이 있어 멋있지 않은가? 삶에 감동을 주며 살아가는 도시, 현대인들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도시생활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보람차기만 하다.

<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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