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묘총' 그리고 '농단'
'민주묘총' 그리고 '농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1.2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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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가 ‘하야 민심’(下野 民心)을 반영한 신조어(혹은 新出語)들을 숱하게 쏟아내고 있다. 광화문광장 등지에서 12일 열린 3차 촛불집회, 19일 열린 4차 촛불집회 때도 그랬다. 눈썰미 있는 ‘뉴스1’의 차윤주 기자가 그런 말들만 족집게처럼 골라내고는 ‘촛불, 유쾌한 진화’란 제목의 기사에다 담았다. 집회 현장뿐 아니라 트위터에서도 찾아냈다고 했다.

맨 처음 반향을 일으킨 신조어는 3차 촛불집회 때 깃발 속에 나타난 ‘장수풍뎅이연구회’란 단체(?)의 이름이었다. “단지 더 친근하게 보이기 위해 특별한 이유 없이 정한 이름”이라고 했다. 하지만 ‘누가 장수풍뎅이연구회를 화나게 했나’란 댓글을 불러오는가 싶더니 4차 촛불집회 때는 수많은 후속타자들을 줄 세우게 만는 위력을 발휘했다.

반려견 애호가들의 ‘전견련’(全犬聯=전국견주연합), 파충류 애호가들의 ‘허물없는 세상’, 물고기 애호가들의 ‘국경 없는 어항회’, 그리고 ‘화실련’(화분 안 죽이기 실천시민연합)이란 이름의 깃발도 속속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민주묘총’(民主猫總)이나 ‘범야옹연대란 이름’도 재치와 해학과 풍자가 넘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밖에 ‘범깡총연대’, ‘얼룩말연구회’, ‘거시기산악회’, ‘전국양배추취식연합회’, ‘트잉여운동연합’(‘트잉여’란 ‘트위터를 하는 잉여인간’이란 뜻), ‘안남대학교 리볼버과’, ‘나만 고양이 없어’, ‘햄네스티 인터내셔널’,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혼자 온 사람들’이란 이름도 보란 듯이 얼굴을 내밀었다.

‘최순실 게이트’는 ‘농단’이란 낱말의 사용 빈도도 엄청나게 늘려 놓았다. ‘국정 농단’에서 ‘교육 농단’, ‘학사 농단’에 이르기까지…. 그 뜻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어원(語源)만큼은 무지했던 터라 확실하게 알아도 둘 겸 국어사전, 인터넷사전을 차례로 뒤적거려 보기로 했다. 민중서림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짤막했다. ‘농단(壟斷)’을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이라고 정의하고 예문으로 ‘국정(國政)을 ?하다.’를 올려놓았다.
좀 더 소상한 뜻풀이가 없나 하는 생각에 인터넷사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비교적 많은 설명들이 올라와 있었다. 현 시국에 심사가 잔뜩 뒤틀린 어떤 이는 ‘국정 농단’을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마음대로 주물러 댐을 빗댄 말’이라고 정의했다. ‘김성일 문학박사’의 뜻풀이는제법 소상하고 그럴듯해 보였다. 그는 “농단(壟斷, ??)이란 말은 맹자(孟子)의 말에서 유래했으며,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농단(壟斷)의 농(壟)은 ‘언덕’, 단(斷)은 ‘끊다’라는 뜻으로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은 언덕, 즉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해서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고사성어’라고 풀이했다. 또 어떤 이는 壟(농=언덕)과 龍(용=벼슬자리)은 같은 뜻으로 ‘농단(壟斷)’의 정확한 의미를 알려면 용단(龍斷)’의 뜻부터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분의 지론인즉, 춘추전국시대에 노나라 조정에서 사용했던 龍斷(용단)이란 말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천자나 임금이 구분해 놓은 중요한 벼슬자리’를 뜻하고, 시장에서 사용했던 壟斷(농단)이란 말은 ‘모든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뜻한다는 것이다. 친절하게도 그는 “당시 시장의 높은 곳에 올라가 시장 상황을 한 눈에 바라보고 시장의 이익을 독차지한 사람 때문에 생겨난 말이기도 하다”면서 “그러므로 농단은 용단을 패러디한 셈이며, 이 같은 내용은 맹자의 ‘공손추 하편’(公孫丑下)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고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하야 민심을 반영하는 신조어와 함께 ‘농단’(壟斷)의 어원도 제대로 익힐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니 고맙다고 고개라도 숙여야 하나? 하지만 똑바로 뜬 두 눈을 잠시 나라 바깥으로 돌려보자. 어물전 망신을 시킨 꼴뚜기처럼 나라 망신만 잔뜩 시켜놓은 것 같아서 씁쓰레한 뒷맛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다. 오호애재(嗚呼哀哉)라!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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