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 땅 (中)
독도는 우리 땅 (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1.0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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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울릉도·독도 수호 박어둔 선양회’의 주선으로 지난달 27일 울산 정토사에서 이수광 독도중앙연맹 총재가 베푼 ‘독도 수호 특강’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앞으로 세 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주

<독도는 어떤 곳?>

독도(獨島)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설명 드리겠다.

독도는 북위 37도 14분, 동경 131도 52분에 위치한 섬이다. 그런데 우리가 부끄러운 게 있습니다. 2000년 이전까지는 우리 행정상의 명칭에 ‘독도’란 명칭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때 2000년 그 이전의 주소는 이렇게 돼 있었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 1번지∼31번지’라고….

그래서 우리 독도를 사랑하는 많은 동지들이 정부에 건의해서 2000년에 가서야 독도에 새 주소가 생겼다. 그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번지∼96번지’다. 우편번호도 생겼는데 ‘799-805’가 독도의 우편번호다.

그러면 독도의 자연환경은 어떻게 돼 있는가?

독도는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라는 두 개의 큰 섬과 89개의 암초와 돌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도는 높이가 99미터. 평수는 2만2천212평이다. 동도에는 경비대 막사와 등대와 선착장이 있다. 서도 보다 조금 더 큰 동도는 높이가 169미터, 평수는 2만6천900평이다.

서도에는 배를 대는 선착장과 어부들의 숙소가 있고, 생수도 생산된다. 기타 돌섬이 7천732개이고, 독도 전체는 5만6천834평이다. 초등학교 운동장 넓이가 보통 1천200평∼1천500평이니 5만6천평이 넘는 섬은 결코 작은 섬이 아니다. 동도와 서도 사이의 수로는 길이가 약 360미터에 폭은 100미터∼160미터 정도다. 수심은 한 5미터에서 7,8미터 정도 된다.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야, 수광아! 이번에 독도에 갔다 왔지?” 그러나 독도는 가고 싶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1년 365일 중에 독도에서 청명한 날은 줄잡아 47일밖에 안 된다. 비 오는 날이 평균 58일이고, 나머지는 안개가 끼거나 폭풍우가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독도에 상륙할 수 있는 날은 1년에 한 70일 정도밖에 안 된다. 여행사의 말을 듣지 말고 5월 10일부터 6월 20일 사이, 날씨가 아주 좋을 때 가면 다행히 독도에 상륙할 수 있다.

<독도의 역사>

서기 512년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 우산국을 정복했다. 신라 때는 물론 고려 때도 그랬겠지만, 조선조에는 황희 정승이 공도(空島) 정책을 폈다. 지금의 정부와는 달리 그 당시의 조정은 왕실만 보호하지 백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울릉도와 독도에 왜구들의 침범이 잦아지자 조정에서는 이곳에 사는 백성들을 모조리 본토로 옮겨 가서 살게 했다. 그것도 한 곳으로만 이주시키면 반란이라도 일어날까봐 저쪽은 황해도, 이쪽은 전라도, 그쪽은 강원도 산골 하는 식으로 흩어져 살게 했다.

울릉도, 독도는 빈 섬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일본인 300∼400명이 떼 지어 몰려와 거의 상주하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백성은 (공도 정책으로) 거기서 살 수 없었다. 그럴 무렵인 1693년에 박어둔 선생이 울릉도, 독도로 들어갔다.

박어둔 선생은 울산 출신으로 절을 관리하는 책임자였다고도 한다. 사실상 총대장 격인 박어둔 선생은 일본말을 잘하는 동래 출신 안용복 장군을 통역으로 삼아 울릉도, 독도를 처음으로 찾아갔다. 그때 스님도 몇 분도 따라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 모든 자금은은 박어둔 선생이 댔다. 강연할 때 자주 하는 말이지만, 만약 1693년에 박어둔 선생이 없었다면 독도뿐만 아니라 울릉도까지도 우리 한국이 아닌, 일본의 영토가 됐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1887년 명치유신(明治維新) 때 조선에 이런 공문을 보냈다. “일본의 서북 경계는 오끼섬이고 우산국과 울릉도는 조선의 영토다.” 이 문서가 지금도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8·15 해방이 되고 난 후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1883년에 일본 주민 274명을 울릉도, 독도에서 송환해 갔다. 그러기에 거듭 강조하지만, 독도는 분명히 우리 땅이다. 그리고 서양에서 처음 독도를 발견한 것은 1849년(헌종 15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꾸르(Liancourt)호’였다. 그 후로 세계 해도에는 독도의 명칭이 리앙꾸르 록(Liancourt Rock)이라 표기되어고 있다. ▶(下)편으로 이어짐.

< 이수광 사단법인 독도중앙연맹 총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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