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일자리·저출산 해결 도울 ‘반찬카페’ 차렸으면”
“여성 일자리·저출산 해결 도울 ‘반찬카페’ 차렸으면”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11.0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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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경 울주다문화가족센터장.
울산제일일보가 마련한 ‘결혼이민여성 취업박람회’가 처음으로 열린 지난달 30일, 남구 종하체육관 한가운데 첫 번째 부스는 내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기 공간의 하나였다. 아마추어라고 해도 일자리만 못 구했을 뿐 당당하게 자격증까지 갖춘 이민여성 바리스타들의 친절한 서비스와 은은한 커피 향이 그 비결이었음직하다. 이 부스의 책임자인 김도경 ‘울주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46)’. 구면인 그녀와 행사 운영본부 부스로 자리를 옮겨 잠시 대화를 이어갔다.

郡, 일반·다문화가정 통합지원

내년엔 남구·북구도 ‘바통터치’

범서읍 구영리에 사무실을 둔 울주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는 울주군시설관리공단이 울주군의 위탁을 받아 꾸려오고 있다. 장(場) 경력 7년차인 김도경 센터장이 말문을 연다. “군내 일반가정과 다문화가정을 생애주기별로, 말하자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가족전문 서비스기관이라 보시면 돼요.”

‘통합’ 자가 붙은 까닭이 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라는 여성가족부 산하 두 기관의 업무를 하나로 묶어 올해 1월 1일부터 시범적 ‘통합운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울산에서는 처음 있는 시도다. ‘통합운영’의 바통을 내년에는 남구와 북구의 지원센터에서 이어받을 예정이다. 2014년부터 전국 지자체별로 시범실시에 나선 결과 예산 절감과 이용률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두 지원기관이 한 지붕 아래 모이다 보니 식구도 4명에서 8명으로 불었다. 그러나 한이 안 찬다. 업무도 덩달아 늘어난 탓이다. “생애주기별로는 영·유아기-학령기-청소년기-신혼기-중년·노년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요, 유형별로는 한부모가정, 맞벌이가정, 다문화가정, 이탈주민가정, 조손가정, 노년가정, 보편가정(일반가정) 등등… 참 많잖아요. 모든 가정과 가족들에 대한 서비스를 지원센터에서 맡고 있는 셈이죠.”

듣자하니 설명에 조리가 있고 또 막힘이 없다. 그럴 만한 배경(스펙)이 있었다. 우선 울산대학교 일반대학원 가정관리학과에서 박사 과정(가족학 전공, 2001.3∼2003.3)을 수료한 재원이다. 게다가 6년 전에는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2010.8)했고, 경일대학교 경영학과 졸업(1993.2),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졸업(1999.2)이란 이색 경력도 차근차근 쌓았다. 그래서일까, 취득한 국가자격증이 7개나 된다. 서라벌대·울산대 외래강사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소장도 지냈다.

여성 바리스타 9명, 일자리 희망

“전담인력 대안, 통합사례관리사”

이날 행사의 취지에 맞게 대화의 방향을 살짝 다문화가족 이야기 쪽으로 틀기로 했다. 지원센터의 ‘바리스타(Barista=’즉석커피 전문가’를 일컫는 이탈리아어) 양성 과정에 대한 설명이 뒤따랐다. “결혼이민여성의 정착을 돕는 패키지 사업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자격요건이 있어요. 입국 후 2∼3년은 거주한 분, 그리고 한국어 실력이 중급 수준은 되는 분이라야 수강 자격이 있죠.”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 과정은 지난 6월경부터 시작됐다. 10명으로 시작해서 1명만 빼고 나머지 9명의 결혼이민여성이 2급 자격증 취득의 보람을 안았다. 하지만 센터장은 이들에게 아직 일자리 하나 구해 주지 못해 몹시 안타깝다. 이들의 취업을 전적으로 도와줄 전담인력이라도 있었으면 하지만 그럴 형편도 못 된다.

궁여지책으로 구상해 본 게 ‘통합사례관리사’를 확보하는 일이다. 다년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실성 있는 구상이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특단의 배려가 없으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국비 지원이 먼저 있어야 지자체에서도 엄두를 낼 수가 있죠.” 인건비 전액을 지자체에서 감당할 처지가 못 되니 백 번 일리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따지고 보면 결혼이민여성이나 경력단절여성에게 어떤 분야에서 일할 능력을 길러주고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은 ‘복지’와 직결된다. 최근 들어 읍사무소를 비롯한 일선행정기관들의 간판이 ‘행복복지센터’로 바뀌는 것도 일선행정의 무게중심을 ‘주민복지’에 두기 때문이 아닌가? (김도경 센터장은 울주군의 경우 범서, 언양, 온산, 온양 4개 읍이 ‘사무소’ 대신 ‘행복복지센터’로 간판을 갈아 달았다고 전했다.)

그녀는 또 다른 구상을 떠올리며 들뜬 표정을 지어 보인다. 결혼이민여성들을 위해 ‘반찬 카페’를 한 번 차리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커피-밑반찬이 있는 ‘반찬카페’

이민여성들에게 차려주고 싶어”

“참, 저도 그렇지만, 요즘 맞벌이 부부들 엄청 많이 늘어났잖아요? 이분들에게 밑반찬 서비스를 해드리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도 같이 마련해 드리자는 구상이죠.” 실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녀의 말에는 모처럼 당찬 힘 같은 게 느껴졌다. “남구 삼산동에선가, 개인이 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반찬카페’는 밑반찬 사러 와서 마음 놓고 수다도 떨 수 있는 여성들만의 사랑방이라 할까요?”

‘여성 전용 커뮤니티 성격’이란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옛날로 치면 아낙네들이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누면서 집안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실컷 풀고 가는 ‘동네우물’ 같은 곳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길어진 설명에는 구체성이 돋보였다. 여러 날에 걸쳐 구상하고 또 생각한 듯싶었다. 센터장은 ‘반찬카페’에서 일할 여성을 결혼이민여성과 경력단절여성으로 점찍는다. 그러면서 손님(고객)을 맞벌이 여성과 일반 여성의 둘로 나눈다. ‘반찬카페’를 회원제로 운영하되 맞벌이 주부를 회원으로 가입시켜 차별적 혜택을 베풀겠다는 것이다.

다 그만한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는 모양새다. 그녀의 말에서 감지할 수 있다. “맞벌이 가정의 주부가 반찬카페에서 실컷 수다를 떨고 나서 속 시원한 기분이 되어 가정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평화는 그런 가정에 제일 먼저 깃들지 않을까요?”

그러나 문제는 경비다. 반찬카페가 아무리 결혼이민여성이나 경력단절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데 도움이 되고 덤으로 가정에 평화까지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필요한 경비를 장만하지 못하면 시쳇말로 ‘말짱 도루묵’이다. 어찌 보면 ‘가정 평화’란 말은 ‘저출산 극복’이란 말과 동의어다.

그래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자치단체장의 마인드’다. 이 점에는 센터장도 공감을 표시한다. “다른 지방 지자체에서 안 하는 사업을 우리 울산의 지자체에서 특성화사업으로 추진한다면 차별적인 효과를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이혼율 증가… ‘나이차·경제력’ 큰 이유

자녀 학교생활 부적응에도 영향 미쳐

대화의 불씨가 이번에는 울주군의 다문화가정 쪽으로 옮겨 붙었다. 2015년 1월 기준으로 1천338세대라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결혼이민여성을 본디 국적별로 나눠보면 베트남 출신(474명)이 가장 많고, 조선족(415명), 중국(189명), 필리핀(73명)이 그 뒤를 잇는다. 여기서 ‘조선족’과 ‘중국’을 합하면 순위는 ‘베트남’을 오히려 앞지른다.

김도경 센터장은 울산에 뿌리를 내린 결혼이민여성들이 그려 가고 있는 이민생활의 실상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런 자세가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올바른 진단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테니까.

초기 이민여성들의 정착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 여기서 ‘초기’란 국제결혼의 법적 요건이 한층 강화되기 이전인 2006∼2008년 무렵을 말하는 것 같았다. 초기의 정착 과정이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늘 ‘언어의 장벽’이 소통의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혼율의 증가’가 새로우면서도 공공연한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일반 가정의 3배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이혼율의 증가’는 ‘한부모가정의 증가’도 동시에 의미한다.

“생각해 보세요. 농촌지역에 시집 온 외국인 여성들은 한국인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벌어지죠. 전국 평균은 약 7년 차이라지만 우리 울주군은 10년 이상 차이 나는 다문화가정이 드물지 않답니다. 외국인 아내는 30대인데 한국인 남편은 60대인 경우도 있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혼율의 증가는 결혼이민여성들의 취업과 그에 따른 경제력 향상승→경제적 지위향상·독립과도 무관치 않다고 했다.

대세를 이루어 가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자녀 양육에 따른 것으로, 한국에서 태어난 2세와 그 엄마 사이에 빚어지는 ‘가족갈등’ 문제를 가리킨다. ‘모자(母子)갈등’ 혹은 ‘모녀(母女)갈등’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 센터장은 이 문제도 ‘경제적 부를 추구하는 엄마의 일자리’ 문제에서 파생된다고 설명한다.

“엄마가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공장 일에 빠져들다 보면 정작 한국말이 배우고 싶은 아이는 그럴 기회가 없어 학교에 가서도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다문화가정에서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이 많이 생기게 되는 도농복합도시 다문화가정의 현주소를 그녀는 있는 대로 전하면서 몹시 안타까워했다.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교생활 부적응 현상은 저학년(1,2,3학년)일 때는 그래도 덜하지만 고학년(4,5,6학년)이 되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에 시집 와서 2∼3년이 지나면 아이는 어린이집 같은 데 맡겨놓고 공장에 일하러 가기 바쁜 이민여성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한글 공부는 등한히 하면서 아이가 지질문이라도 던지면 한국 엄마들과는 달리 대답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나이 많은 아빠도 그렇고요.”

김 센터장은 이른바 ‘왕따 어린이’가 다문화가정에서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 나갔다. ‘본의 아닌 방치’라는 표현도 구사했다. 그 이유를 ‘결혼이민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한국 교육의 부재’에서도 찾으려 했다. 안정된 정착을 위해서는 한국사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이 대목은 우리 교육당국과 행정당국, 그리고 지역사회가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중언어 강점, 글로벌 인재로 키웠으면”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이중언어의 구사 능력이라는 가설에는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를 표시한다. 그러나 이 장점을 북돋아주고 자부심으로 이어주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아직 걸음마 수준을 못 벗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김 센터장 역시 같은 지론을 펴는 가운데 그 일차적 책임을 다문화가정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중언어, 그리고 언어의 다양성에 대한 부모들의 이해가 대체로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런 마인드 자체가 없다고나 할까요? 이 아이들을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려는 당국의 관심과 노력도 절실한 것 같고요.”

본인의 가정사를 넌지시 캐물었다. 다섯 살짜리 늦둥이 딸아이가 있다고 했다. “우리 아이와 출퇴근을 늘 같이 하곤 하죠. 눈을 뜨면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퇴근할 무렵이면 다시 데려오고.”

직장 일 하랴, 아이 돌보랴. 그러다 보니 ‘내 생활’이 사라지고 없다. 취미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음악 감상, 영화감상을 곧잘 즐겼는데 요즘 같아선 도저히 그럴 시간을 낼 수가 없죠.”

울주군 두동면 은편마을이 태어난 고향이다. 지원센터 사무실도 울주군 속에 있으니 울주군의 울타리를 영영 못 벗어날지도 모른다며 수줍게 웃어 보인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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