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빨라지고 밥값 각자 계산
귀가 빨라지고 밥값 각자 계산
  • 강은정 기자
  • 승인 2016.10.2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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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 한 달… 달라진 울산풍경
식당마다 '3만원 영란메뉴' 선봬
약속 줄이고 가족과 집에서 식사
공무원 사이 더치페이 문화 확산
구내식당 이용 늘고 음식점 썰렁

28일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울산에서도 더치페이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시행 초 모호한 법령 해석 기준 때문에 곤란을 겪는 사례도 점차 줄어들면서 서서히 정착되는 분위기다.

짧은 기간이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접대문화와 같은 잘못된 관행들이 속속 사라지는 등 당초 기대됐던 효과가 사회 곳곳에 번지면서 긍정적인 평가가 우선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매출감소나 ‘정(情)’이 사라지는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우선 김영란법 시행으로 지역 직장인들의 삶은 눈에 띄게 바뀌었다.

일주일에 5일은 술을 마셨다는 한 기업체 김모 차장은 “저녁 술 약속이 없다보니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건강을 챙기려 운동을 시작하면서 한 달 사이 3kg이 빠졌다”며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아내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공무원, 직장인들의 회식이 크게 줄었고, 간단히 점심식사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각자 먹은 것을 계산하는 더치페이도 늘었다.

언론인 김모씨는 “취재를 위해 사람을 만날 때면 식사 보다는 커피숍에서 약속을 잡고, 돈도 각자 내는 편”이라며 “식사는 되도록이면 피하고 전화로 취재를 하는 경우가 일상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이 사라진 문화에 대해 “안타깝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캔커피 하나를 주더라도 법 때문에 거절해야 하는 사회가 각박하게 느껴진다는 것.

한 학부모는 “해마다 아이 소풍 때 선생님 도시락도 준비하곤 했었는데 김영란법 때문에 500원짜리 음료수도 받질 않는다고 하니 각박하게 느껴지더라”며 “작은 성의일 뿐인데 이런 것들마저 법에 걸린다고 해서 한국사회 특유의 ‘정’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은 “친구들끼리 만나더라도 김영란법 저촉 여부에 조심하는 등 각자 직업에 따라 조심해야 할 부분이 생기더라”면서 “인간관계가 마치 직업과 사회적 지위로 분류되는 현상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요식업계 업주들의 볼멘소리는 더욱 높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 감소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7일 각종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남구 달동의 점심시간 풍경은 한 달 전과 달리 한산했다. 한 달 전에는 구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과 인근 사무실 직원들로 북적거렸지만 이날은 달랐다. 이곳의 한 한정식 집에 들러보니 한 테이블만 10명의 예약석으로 채워져 있을 뿐 나머지 60여석은 텅 비어 있었다. 이 음식점은 김영란법 시행에 맞춰 지난달 28일부터 3만원 이하로 메뉴를 재구성했다. 불필요한 반찬 가짓수를 줄여 단가를 맞췄다고 사장은 설명했다.

하지만 한 달 여 지난 현재 매출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음식점 주인 김모(51)씨는 “평소 예약손님이 60% 이상을 차지했는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라 발길이 뚝 끊겼다”며 “만남 자체를 꺼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음식 가격을 낮춰도 소용없는 것 같다. 한 달 만에 종업원도 다 내보낼 정도로 힘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폐업하는 고급 음식점들도 속출하고 있다. 공무원과 기업체 등 회식 문화가 사라진 것은 물론 저녁 약속마저 뚝 끊기면서 접대를 위해 이용됐던 고급 음식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남구 삼산동의 한 한우음식점이 얼마 전 폐업하는 등 지역 내 10여개의 고급 음식점 운영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울산 시내 곳곳의 식당 업주들도 “저녁 예약은 사라진지 오래다. 먹고살기 힘들다”며 하소연했다. 반면 구내식당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이용객이 30% 가량 늘었다. 각 구·군청 공무원들이 외부에서 식사를 하는 것 보다는 구내식당을 이용하라는 권고 사항에 따라 이용객이 늘어난 것.

남구청 구내식당 영양사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구내식당 이용객이 확연히 늘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울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한 달째를 맞은 가운데 울산에서 서면신고 건은 한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12문의는 많지만 위반 사항을 담은 서면신고는 0건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서면신고는 없는 것으로 볼 때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미리 조심하거나 김영란법 시행 전부터 관계기관 교육 등으로 어느 정도 제도가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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