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눈이 안보여요”
“엄마, 눈이 안보여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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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큰 아이는 대화를 하다가 가끔 “엄마 눈이 안 보여요”라고 얘기한다. 이게 무슨 말인지, 사연은 다음과 같다.

지금 현재 큰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한 사람의 생각, 감정, 행동의 표현을 의미하는 ‘성품’ 교육을 2개월 단위로 주제를 바꾸어 가면서 실시하는 곳이다.

그러한 교육과정에 따라서 올 3월과 4월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잘 집중하여 들어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정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경청’, 5월과 6월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희망적인 생각, 말, 행동을 선택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긍정적 태도’에 대한 성품을 익혔다.

또 7월과 8월은 어떠한 상황이나 형편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태도인 ‘기쁨’, 9월과 10월은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환경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잘 관찰하여 보살펴주는 ‘배려’에 대한 성품을 익혔다.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여 들은 부모 교육에는 참 인상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원장님이 몇 가지 성품에 대하여 설명하신 것 중에서 특히 필자의 가슴을 콕 찌르는 사례가 있었다. “경청이라는 성품은 말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손발을 움직이지 않고, 모르면 질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들은 설거지를 하고 있다가도 아이들이 ‘엄마~’하고 부르면 ‘어~’라고 대충 대답하면 안 되겠죠?” 하셨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원장님이 말씀하신 그 사례가 평소 자기들의 모습인양 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아이들의 용어로 ‘웃고픈’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큰아이는 놀이 혹은 대화를 하다가 필자가 딴 곳을 바라본다든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 “엄마 눈이 안 보여요”라고 애기하는 것이다.

왜 부모는 눈이 보이지 않게 대화를 하는 걸까?

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상담을 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내가 강의하고 있는 과목에 대한 진단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상담을 하러 온 학생이 A학점 2과목, B학점 3과목, C학점 3과목, D학점 2과목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그 학생과 어떤 과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는가?

부모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좋은 학점에 대하여 대화하겠다는 사람은 전체의 7%에 불과한 반면, 가장 나쁜 학점에 대하여 대화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90%가 넘었다.

잘한 일은 어차피 잘했으니 따로 애기할 필요가 없고,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누면 된다는 게 일반적인 부모들의 생각인 것이다.

사실 필자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좋아하는 것과 학점이 잘나오는 것이 100%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잘못하는 것은 내 책임이 될 수도 있으므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지나치게 똑똑하다. 이성적인 부모의 경우 대체로 마음보다는 머리가 앞선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다독거리기보다는, 잘잘못을 따지거나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를 가르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이들의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윽박지르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잘잘못을 따진다. 그러면 아이는 어느 순간 숨통이 조여 오는 갑갑함을 견디다 못해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게 된다.

부모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말을 처음부터 일목요연하게 꺼내는 아이는 드물다. 부모님이 내 말을 찬찬히 들어줄 여유가 있는지,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인데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나를 맥 빠지게 만드는 건 아닌지, 과연 이해해 줄지 등등….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뜬금없이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거나 부모의 속을 살짝 긁어놓기도 한다. 그러니 아이들은 “우리 부모님은 내가 하는 말을 다 들어보지도 않고 이래라 저래라 해요”라고 말한다.

아무리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도 자신의 판단과 의견을 모두 접어둔 채 아이의 말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일단 잘 들어주는 게 먼저라는 말이다. 교육학자인 토마스 고든도 부모와 아이의 대화에 있어서 제 1원칙은 ‘적극적인 경청’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경청이 중요하다.

필자 또한 오늘부터라도 아이로부터 “엄마 눈이 안 보여요”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그냥 무조건 잘 들어주는 것을 실천해야겠다.

< 유영미 울산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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