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科學)과 철학(哲學)
과학(科學)과 철학(哲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2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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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을 과학과 기술의 만능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물질 만능주의라고도 말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사람이 꿈꾸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시켜 주고 또 가능하게끔 설명하여 틀림없는 사실처럼 이해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라디오와 흑백 텔레비전에서 ‘로봇 태권브이’와 ‘태권동자 마루치와 아라치’의 주제음악을 듣고 남의 집이나 만화방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던 적이 있다. 그저 꿈이 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 미래를 그린 공상만화가 이제는 현실이 되어 로봇이 등장하게 되었다. 광속까지는 아니지만 몇 배의 음속으로 나는 비행기가 나타나고 정말 우주선이 화성까지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사람이 생각하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다.

네덜란드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 ‘쾌락의 정원’은 1500년경의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래의 타락과 폐허의 도시 속에 있는 것 같은 섬뜩함을 느낀다.

과학은 반복된 실험적 증거에 의해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인정받을 수 있기에 단순히 표현은 할 수 있어도 실증은 할 수 없는 상상과 공상과는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단순히 과학적인 설명과 증명이 가능하다고 하여 그것이 불변의 진리라고 하지도 않는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엠페도클레스가 만물은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졌다고 했을 때 당시에는 과학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졌었지만 지금은 유치원생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사람은 기하학과 대수학으로 표현했고 그 결과를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왜 우리는 생각을 공유할 수 있고, 말로 설명하고, 글로 표현하면 될 것을 어렵고 힘든 수식과 기호에 의존했을까? 인문계와 이공계의 구분도 이렇게 하여 생겼을까?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평생 자신의 능력 중 일부만 사용한다고 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성격과 인물이 다른 걸작품이다. 사람은 인격체이지 단순히 과학기술의 소산일 수는 없다. 출생과 죽음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나 한 사람의 생각과 일생을 과학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삶의 철학이 있으며 모두 다른 철학으로 살다가 돌아간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고(思考)는 과학과 기술에 앞서 있으며 물질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불변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철학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과학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자연현상을 이해하면서 철학이론이 나오기도 한다. 물리학 이론 중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운동하는 물체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에너지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여기에서 철학적 이론도 나왔다. 요즘처럼 복잡다단한 시대를 ‘불확실한 시대’, 또 젊은 세대를 ‘불확실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과학 원리에서 현상학적 철학을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학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과학이 만능이 아니고 절대과학이 인간의 모든 욕구를 채울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사색과 낭만의 계절, 가을이 왔다. 한 권의 책을 읽어보고 싶고, 감미롭고 분위기 있는 음악회에도 가고 싶고, 향기롭고 여운이 남는 커피도 한 잔 먹고 싶은 시간이다. 이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생각과 감상과 향을 과학적 수식으로 남기고 싶지 않음은 철학이 있는 과학자이고 싶은 마음에서다.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열심이고 최고인 것은 인정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견강부회하거나 자신의 이론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독선적 과학자나 철학자가 나오지 않길 희망한다.

이 가을엔 모두가 철학자요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로 남길 기원한다.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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