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따, 2떳, 3명의 법칙
1따, 2떳, 3명의 법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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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이 시끌시끌하다. 이름을 얻은 기성 작가가 습작을 빌미로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조목조목 적어 내려간 글은 차마 읽기에도 버거운 내용으로 그득했다. 한 사람의 폭로로 시작된 피해자들의 진술은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늙은 작가도 젊은 작가도 어린 습작생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는 폭로에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어리고 힘없는 처지인 사람들에게 자행되는 폭력은 인간이하의 짐승이나 하는 짓이다. 흔히 말하듯 ‘개’라는 접두어를 붙여도 아깝다. 아니, 빗대어 말하는 짐승에게조차 미안할 정도이다.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사람들은 세 단계를 거친다는 속설이 있다. 이름하여 ‘1도 2부 3백’이라는 법칙이다. 처음에는 죄를 부인하고, 두 번째는 잡아떼고, 결국은 자신을 구해 줄 백(배경)을 찾는다고 한다. 문단 내 성폭력 사건도 마찬가지. 대부분 가해자는 처음에는 침묵으로, 다음에는 기억이 안 난다고 부정하다가 지금은 사과의 말을 몇 마디 던지고 마는. 이 사과의 말은 작가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성의도 없고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140자의 글자를 쓰는 게 고작인 SNS로 사과하는 작가의 말에 누가 공감할 것인가. 몇 글자의 트윗이 아니라 글을 다루는 작가라면 적어도, 절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나 장편 소설을 쓸 때처럼 간곡하고 절절하게 뼈아픈 반성의 말을 쏟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 터질 게 터진 거라는 반응이 많지만, 작가로서 아프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예전에 B급으로 취급되던 문화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기 시작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표현이라는 통로를 거쳐, 대중에게 발표되는 대부분 작품은 그들만의 잣대에 어울릴만한 작품으로 가득했다. 철학이 거세된 작품을 대할 때면 자괴감이 올라왔지만 무딘 나의 감각을 탓하고 넘어갔는데 작금의 사태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많은 독자가 그들의 작품을 걷어 들이고 성토하는 동시에 문학과 멀어진다 생각하니 애달프다.

언어폭력과 신체폭력, 데이트폭력, 강간 그 어느 것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작가라는 이름으로, 선배 기성시인이라는 위치에서 태연자약하게 저질렀다는 상황을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지금은 분노한다. 아니 피해를 받은 모든 이들과 울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다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죽은 농민이 자식들에게 했다던 당부가 생각났다.

“눈물은 해결하지 못한다. 네 생각을 떳떳하게 말해라.”

우리는 왜 진작 이 말을 아이들에게, 힘없는 이들에게 말하지 못했을까. 많은 피해자는 폭력을 당하는 자리에서조차 떳떳하게 제 말을 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중을 생각해서, 혹은 자리를 차지한 권력에 주눅 들어서, 혹은 폭력에 길든 나머지 자존감을 잃어서였다. 어떤 피해자는 자신이 똑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자존감이 없어서 그 일을 당한 게 아니라고 썼다. 그러면서 누구든 당할 수 있노라 담담하게 고백했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내부 고발자가 되는 일은 어렵고 힘들고 많은 동료를 잃는 일이라 누구나 꺼리는 일이다. 똑똑한 이도 자존감이 상당한 이도 당하는 것이 상황의 논리와 권력의 속성일 것이다. 떳떳하게 제 의견을 말하는 일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격을 짓밟고 아무렇게나 사과하는 식으로 마무리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이제 뒤집혀야 한다.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 따져보고 정말로 그런 것인지 끝까지 추적해 볼 일이다. 갑과 을의 논쟁에서 시작된 차별의 문제뿐만 아니라 문단 내 성폭력 사태는 ‘1따 2떳 3명’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하나, 정확하게 따져 파악하고 둘, 떳떳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셋, 명명백백하게 사실과 진실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작가의 대부분이 고작 몇 마디로 사과하고 활동을 중단하고 책을 내지 않는다는 식의 행보를 보이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라 생각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벌을 받는 동시에 처절한 자기반성에서 오는 그들의 사과문을 당사자에게 보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문단으로 들어오려는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결코 문학은 죽지 않으며 문학은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새롭지 않고 고답스럽지만 사실이다. 아직도 문학의 힘을 믿으며 면벽하는 수도자처럼 정진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 많다. 문학을 꿈꾸는 이들이여. 와서 함께 진흙탕을 걷어내 봅시다. 1따, 2떳, 3명의 법칙으로.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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