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위기와 협치(協治)
그리스 위기와 협치(協治)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2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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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복지가 유기적으로 잘 짜인 북유럽 복지 국가에서는 누구나 일을 한다. 그래서 고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소득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누진적 세금과 비례적 사회 보장 기여금을 낸다. 그래서 국민 부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조세 저항은 다른 나라보다 약한 편이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국민 누구나 필요한 복지를 차별 없이 향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유럽 복지 국가에서는 ‘경제·노동-국민 부담-복지’가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잘 짜여 있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들은 유럽연합의 회원국가로 남은 채 천문학적 규모의 빚을 갚느라 고생하고 있다.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약속한 2015년부터 2018년 사이 재정흑자를 달성하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13%에서 23%로 인상했고, 67살로 정년을 연장하여 조기은퇴를 막는 연금개혁 속에 국민들은 3분의 1씩 연금이 깎이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유럽연합 통계 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그리스에서 빈곤 또는 사회적 배제 위험에 처해있는 빈곤층의 비율이 2008년 29.1%에서 2015년 35.7%로 눈에 띄게 상승했다.

이는 그리스 전체 인구 중 380만명에 해당한다. 재정 위기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리며 2010년부터 국제 채권단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그리스는 실업률이 치솟고 연금이 깎이며 많은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스는 2010년 이래 EU,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 채권단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약 2천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가까스로 국가 부도 위기에서 벗어났다.

경제 위기가 본격화된 2011년쯤 그리스의 실업률은 27%까지 치솟았다. 보통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29년에 시작된 미국 대공황의 상황이 최고로 나빠졌을 때인 1932년경의 실업률이 27%였다. 그 끔찍한 상황이 최근 그리스에서 경제 위기로 재현된 셈이다.

그리스는 1944년부터 49년까지 좌파·우파 사이의 내전을 거쳤고 1967년부터 74년까지 군사정권 시기를 거쳤다.

하지만 이후 민간 우파 세력의 집권과 1981년 전후 첫 좌파 정부 등장, 1989년 우파 정당과 공산당의 연립정부 구성 등을 통해 민주주의 이행과 공고화를 이룩했다.

‘그리스 패러독스(paradox)’는 이처럼 민주화의 성공적인 완수와 민주적 제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정치체제의 비효율과 후견주의가 계속되어 국가 부도 위기를 지속적으로 겪는 그리스 현실을 일컫는 말이다.

‘패러독스’ 또는 ‘역설’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되고 부조리하지만, 표면적 진술을 떠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근거가 확실하든지, 깊은 진실을 담고 있는 표현을 뜻한다.

결국 그리스 사례는 국내 정치에서 무원칙한 타협의 위험과 국제 정치에서 무분별한 휩쓸림을 경고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경제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공고화의 최대 정의가 정착되지 않으면 공정한 절차를 강조하는 최소 정의의 민주주의도 그 존재 기반이 무너지면서 무의미해진다는 교훈을 주는 듯하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와 민생 불안의 심화 과정에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정치권과 행정부는 무책임과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어 심히 유감이다.

이보다 더 추할 수는 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진부(陳腐)하고 부박(浮薄)한 담론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이를 경청하는 소통(疏通)의 정치와 함께 ‘그리스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위기’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도 협치(協治)라 생각한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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