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두다가 바둑을 두려면
장기 두다가 바둑을 두려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1.0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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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부터 확 바꿔야 한다. 생각의 전환이다. 장기는 주어진 내 말들을 규칙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서 상대방 말을 잡아 가며 상대방 임금을 잡으면 끝난다. 장기판에 내 말 네 말다 나와 있다. 다 보면서 게임을 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말들을 움직여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기는, 너도 보다 시피 내가 그것을 생각했었는데 깜박 했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물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물론 못 물려주겠다는 시비가 따르고 이것이 있어서 재미가 있다. 순순히 물려주면 싱거워 재미가 없다.

바둑은 가로 19줄 세로 19줄, 각 줄이 만나는 361개의 교차점에 흑과 백돌을 하나씩 번갈아가며 놓고, 더 놓을 자리가 없을 때까지 놓고 난 뒤에 누구의 집이 많은가 계산하여 이긴 사람을 가린다. 비어있는 바둑판에 바둑돌을 놓아가는, 집을 짓듯이 게임을 창조하는 성질이 있다. 상대방이 어디에 돌을 놓을지 쉽게 알 수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둑돌을 한번 놓으면 일수불퇴(一手不退), 좀처럼 물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스릴이 있다.

참여정부의 사람 쓰던 모습은 장기판을 닮았다. 정권 창출에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사람들 다 모아 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회전문 인사가 장기판의 말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판이 끝날 때까지 남아있는 말의 모습도 장기판의 사(士)처럼 몇 안 된다. 어떤 공격, 방어, 그리고 방심 등의 연유로 잡혔던 말의 모습도 장기판과 비슷하다. 물론 상대방 말도 상당히 잡았었다. 과거사 진상을 규명하면서 잡힌 말들도 있다. 그리고 ‘폐가망신’에 걸려 세상을 뜬 사람도 있다. 판에 올라오지도 않을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사람 쓰려는 모습은 바둑판을 닮았다. 총리를 어느 화점(花點)에 놓을 것인가, 어느 변에 각료들을 놓을 것인가, 기자실을 천원(天元, 바둑판의 한 가운데)에 마련할 것인가, 대기업 총수들을 소목(小目)으로 운영할까, 외목(外目)으로 지원을 받을까 등이다. 이명박 정부는 선거 기간 동안에 애를 썼던 사람들에게까지도 정부의 어떤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때로는 희생까지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장기를 두지 않고 바둑을 두겠다는 것이다. 사실 바둑과 장기를 다 둘 줄 아는 사람들은 장기보다 바둑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몇 가지만 찾으면, 첫째는 창조하는 맛이다. 텅 비어 있는 바둑판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데에 재미가 있는 것이다. 둘째는 결과보다 과정에 중점을 두는 점이다. 그래서 ‘이렇게 두어도 한 판의 바둑이 된다.’는 말을 한다. 져도 재미있는 것이다. 셋째는 장기보다는 바둑의 수가 무궁무진하여 항상 새로운 판이 짜여 지는, 성취동기가 살아나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가 장기를 두지 않고 명국(名局)이라 일컫는 좋은 바둑게임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바둑판 재료가 어떤 유명한 나무가 아니어도, 때가 묻고, 금이 가고, 갈라진 틈이 있는 소나무 판이어도 멋있는 게임, 국민들이 감탄하는 게임을 보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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