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서낭치기 은상, 축하합니다!
병영서낭치기 은상, 축하합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2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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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예술축제(이하 축제)가 1958년에 처음 열린 이래 올해로 57회째를 맞이했다. 올해 행사는 13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렸다. 축제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민속예술을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해 출범한 국가규모의 민속축제로, 그동안 이 행사를 통해 400가지가 넘는 민속 종목이 발굴됐다. 올해 축제에는 울산시 대표로 ‘울산병영서낭치기’가 참여해 입장상과 은상을 받았다. 축하해 마지않는다.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태화강대공원 일원에서는 제50회 울산시 처용문화제가 열렸다. ‘처용마당’에서는 울산 5개 구·군 프로그램이 날짜를 달리하면서 펼쳐졌다. 3일에는 중구문화원 차례로 ‘병영서낭치기’ 공연이 있었다. 30분 남짓 이어진 이번 연희도 놓치지 않고 참관했다. 그 전에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병영서낭치기’는 연희 때마다 양상이 달라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병영서낭치기를 재현하기에 앞서 그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긍정적 활용방안에 대한 접근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노력이 전무한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았다. 병영서낭치기의 재현이 백화점 식, 짜깁기 식이어서 민속적·역사적 정체성과 연결 짓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병영서낭치기는, 명칭에서 짐작하듯, 병영의 서낭당에 모신 당신(堂神)을 찾아가 어떤 행사의 시작과 끝남을 알리는 의식이 그 중심이다. 따라서 ‘서낭신을 모신다’는 상징적 의미와 ‘치기’라는 목적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서낭치기를 바르게 전승하려면 서낭치기의 출처에 대한 이해부터 선행될 필요가 있다.

첫째, ‘서낭치기’가 ‘병영서낭치기’로 부르게 된 연유는 이렇다. 이두현 교수는 1967년 2월부터 1971년 3월까지 전국의 조사대상지역 20곳을 찾아 제보자와 면담했다. 답사자와 제보자의 면담을 정리한 것이 <세시풍속지(歲時風俗誌)>로 『한국민속논고』(이두현.학연사.1984)에 실렸다.

이두현 교수가 울산을 답사한 시기는 1970년 10월이었고, 면담자는 경남 울산시 병영 남외동 곽남마을에 거주하는 이종길(1884.남.86)이었다. 기록에는 ‘서낭치기’로 되어 있지만 병영 사람 이종길과 면담했다 해서 ‘병영’이란 지명이 하나 더 붙었다. 이종길은 행사의 존속기간이 50년 전이라 구술했다. 역산하면 1920년이다. 1920년대는 일제강점기이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다음해이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 미루어 서낭치기 행사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편찬된 전적을 잠시 살펴보자. 『언양현읍지(1880)』에는 마두전 1가지, 『영남읍지(1894)』에는 마두희 1가지, 『울산읍지(1899)』에는 없음, 『울산읍지(1934)』에는 마두희·매귀유·영등제 등 3가지, 『흥려승람(1937)』에는 매귀유·마두희·각저희·영동제 등 4가지를 각각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서낭치기’ 혹은 ‘병영서낭치기’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따라서 울산 병영에 거주했던 이 옹(翁)의 구술은 지극히 보편적, 주관적이며 객관적 신빙성이 약하다.

둘째, 서낭치기는 지신밟기와 연계된다. ‘외출할 때는 어른께 고하며 돌아와 다시 어른께 고하는(出必告反必面)’ 고유제(告由祭), 고불제(告佛祭) 등의 사례처럼 먼저 서낭당에서 ‘치기’ 즉 의례를 고한 연후에 길쇠를 치면서 한 가정을 방문한다. 성주풀이, 곡간풀이, 조왕풀이, 장독풀이, 마굿간풀이, 우물풀이, 마당풀이 및 대문풀이를 끝으로 지신밟기를 마치고 다음 가정으로 이동한다. 서낭치기의 일반화된 모양새다.

셋째, ‘치기’는 의례이지 싸움이 아니다. 대공원(大公園) 즉 ‘큰 공원’을 죽공원(竹公園)으로 잘못 기재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서낭치기에서 ‘치기’는 의례가 바른 뜻이지 ‘기(旗)로 치는 싸움’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등장 가면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점이다. 이 또한 4조씩 편성된 결과이다. 해방 이후 지신밟기에는 양반, 종가도령, 색씨 등 잡색중 포수 1인이 연희의 원만화향을 위한 벽사적 역할로 나타난다.

넷째, 큰소리로 부르는 칭명(稱名)의 ‘등광궐아괘보살’은 서낭치기와 무관한 매귀악 가사(呵辭)이다. 이는 기록자가 백성들의 부르는 소리의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소리나는 대로 짐작해서 적은 결과이다. 등궐을 귀신이라 해석하면 무리다. ‘등광궐아궤보살(燈光厥兒軌菩薩)’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괘(掛)’와 ‘궤(軌)’의 발음이 비슷하긴 하지만 궤(軌)는 ‘본받을 만한 모범’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훌륭한 수행자를 ‘궤범사(軌範師)’라 부른다.

연행을 마무리할 때 서낭대 등을 태우면서 “등걸아 귀신을 불살라라”라는 주사를 외친다고 하는 서술은 옥에 티로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또한 연희에서 ‘치기’를 좌정신께 만반진수를 대접하는 의식을 모른 채 깃대를 서로 부딪쳐 싸우는 양상으로 오해한 것이다. 비유컨대, 물속에 비친 달(水非月)을 보았을 뿐 하늘에 떠 있는 달(天眞月)을 미처 보지 못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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