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 억새평원, 역사를 알고 오르자
신불산 억새평원, 역사를 알고 오르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2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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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밭의 절경 신불산 억새평원

신불산 억새평원에 10월의 휴일이 오면 전국의 등산객들이 하루에도 수천 명, 수만 명씩 몰려든다. 억새평원으로는 사자평이 약 400만㎡로 전국에서 가장 넓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자평을 ‘영원한 억새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신불산 억새평원은 약 250만㎡으로 추산된다.

사자평 억새꽃밭은 더욱 노령화된 상태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와는 달리 신불산 억새평원 꽃밭은 조금은 덜 노령화되어 싱싱하면서도 ‘선택과 집중’이란 유행어처럼 한 곳에 집중적으로 자생하다시피 해 그 아름다움이 사자평보다 한 수 위다.

신불산 평원은 전국의 등산 마니아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곳이다. 가을이면 누런 억새평원 위에 억새꽃들이 백설이 내린 듯 순백의 꽃밭을 연출하고, 봄이면 탐스럽고 파릇파릇한 새순들이 또 다른 별천지를 연출한하기 때문이다.

수십만 평 황색의 바탕 위에 백색이 조화를 이룬 억새밭의 물결…. 그 위로 푸르디푸른 가을하늘은 손가락으로 푹 찌르면 바닷물 같은 청색 물감이 지천으로 쏟아질 것만 같고, 평원의 억새밭 사이로 흩어진 송림에서는 강렬한 녹색의 기운이 샘물처럼 뿜어져 나온다. 이쯤 되면 산을 좋아하는 등산인들은 가을날 신불산 억새평원이 이루어내는 황, 백, 청, 녹의 조화에 숨이 막힐 지경에 이른다.

신불산 정상에서 영축산 정상까지 약 3km 등산로의 동쪽은 수십 길이나 되는 바위절벽이고 서쪽은 수십 만 평은 너끈할 것 같은 억새평원이다. 그 경치나 규모가 전국에서도 손꼽을 정도이니 누가 감히 다시 찾지 않겠다고 장담할 것인가.

-신불산 억새평원 일원의 역사유적지

신불산 억새평원은 이처럼 절경인지라 울산광시는 이미 십여 년 전에 이곳을 ‘울산 12경’의 하나로 선정했다. 이곳 평원에는 등산인들이 알아두어야 할 역사유적지들이 몇 곳 있으니 산을 오르내릴 때 알아보면 좋을 것이다. 신불산(神佛山)은 ‘신성하고 밝은 산’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신불산은 규모가 워낙 큰 산이어서 왕봉(王峰)이라 했고, 간월재에서 파래소폭포로 통하는 골짜기를 왕방골이라고 했다. 영축산(靈鷲山)은 취서산(鷲栖山) 혹은 영취산으로도 불렸지만 양산시와 통도사에서는 2002년부터 영축산으로 통일해서 부르기로 했다. 본디 영취산은 인도의 마갈타 왕국에 있었던, 석가모니가 설법을 베풀었다는 신성한 산으로, 영남알프스의 영축산과 같이 독수리와 바위가 많고 경치가 좋으며 그 모습이 닮았다고 한다.

신불평원에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다고 추정되는 산성이 있었는데, 이 평원이 동서로는 짧고 남북으로는 길어 단지나 항아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단지성(丹之城)이라고 했다(울주군 『상북면지』). 또 흡사 시루를 엎은 것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시루성(甑城)’ 혹은 ‘시리성’이라고도 불렀다.

신불평원의 요소요소에 남아있는 돌무더기와 돌담은 임진왜란 때 있었던 단조산성 터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양산과 언양의 의병들이 신불평원에서 현재 삼남면 삼성SDI에 진을 치고 있었던 왜군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여천각시’에게 정보를 얻은 왜군의 기습공격으로 몰살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단조산성은 붉은 단(丹)자와 새 조(鳥)자를 쓰는데, 학의 머리 위에는 붉은 점이 있다. 이 성은 학이 길게 뽑아 세운 목줄기의 머리 위에 한 점의 붉은 점처럼 솟아있는 성과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영조 때의 암행어사 박문수와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 한 장수가 이 산성을 보고는 “산성의 험준함이 한 명의 장부가 능히 만 명을 당해낼 수 있는 곳”이라고 격찬했다고 한다.

여천각시굴은 영축산 정상에서 정남쪽으로 약 200m 내려가면 바위지대 속의 공터에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왜군들이 동쪽의 수십 길이나 되는 바위절벽 때문에 신불평원으로 침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조선인으로 위장해 신평에서 살면서 여천각시굴에서 베를 짜던 각시를 찾아가 한피기고개로 둘러가는 길을 알아냈다. 왜군들은 삼성SDI 쪽 왜군 진지에 많은 허수아비를 세워두고, 청수좌골과 청석골을 타고 올라와 방심하고 있던 의병들을 몰살시켰다. 그래서, 현재 천지(天池 : 영축산 참샘터) 서남쪽 붉은 흙으로 메워진 늪지대를 (의병들의) ‘피못’이라 하고, 청수좌골과 청석골 사이의 능선을 ‘백발등’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근동 사람들은 가을이면 “원수로다 원수로다 인간백발 원수로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그 때를 회상한다고 한다.

김원 등산전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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