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어풍대’
울산의 ‘어풍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0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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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풍대(御風臺)’라는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전국 도처에 소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봉화군 청량산에도, 태안면 백화산에도, 금산 제원면에도 ‘어풍대’가 있다.

울산의 ‘어풍대’는 동구 일산진 마을의 동북쪽으로 돌아가다가 곶(串)의 한 부분이 외따로 바다 밖으로 쑤욱 뻗어 수천만 년 동해의 파도에 씻기고 씻기어 기암(奇巖)들만 도드라져 바위언덕을 이루는 곳으로, 일산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어풍대라 부른다. 어풍대의 지명유래에 대해 임금님의 나들이 설화와 모재(慕齋) 김안국의 시서(詩序)에 담겨진 이야기가 함께 전해져 온다.

옛날 신라가 마침 삼국통일의 큰 과업을 이룩해 나라 안의 살림과 제도가 태평성세를 이룩하니 그동안 전쟁으로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기 위해 군주도 궁인들을 데리고 경승지를 찾아 풍류를 즐기며 쉬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임금이 행차할 때에는 문무백관과 궁녀들 또한 따르니 일산진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민섬과 작은 돌섬으로 건너가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뱃놀이를 하니 녹의홍상(綠衣紅裳) 고운 궁녀의 모습들이 화원을 연상케 하여 이곳을 ‘꽃나루’ 옛말로 ‘곶늘’이라 했고, 한자로 그 뜻을 새겨 쓴 것이 ‘화진(花津)’이다. ‘고늘’이라 함은 ‘꽃’의 옛말이 ‘곶’이요, ‘나루’의 연체형이 ‘늘’인 것에서 연유한다. 오랜 세월 속에 음이 변해 ‘고늘’이 된 것이라 한다. 또 왕과 왕후가 행차하면 자루가 긴 양산(日傘)으로 햇볕을 가리니 이것을 일산(日傘)이라 했던 것이 지금은 일산(日山)이란 지명으로 굳어졌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모재(慕齋) 김안국의 유고집에 그의 시 ‘어풍대’와 ‘시서’의 기록이 전해지면서 후자의 지명유래가 더 신뢰성을 갖게 된다. 그가 중종 12년(1517)에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울산을 순시하면서 여러 수의 시를 남겼는데, 그의 문집 『모재집(慕齋集)』에 그가 남긴 시(詩) ‘어풍대(御風臺)’의 시서(詩序)가 이채롭다.

“어풍대에 올랐다. 어풍대는 울산 바닷가에 있는데, 남으로는 최치원의 해운대와 북으로 이목은의 관어대(영해소재)와 비교하여 경치가 갑을을 다툴 정도인데(登御風臺 臺在蔚山海邊。南則崔孤雲海雲臺。北則李牧隱觀魚臺。景勝相甲乙), 고금에 유람하는 자가 많았지만, 아직 이름이 없으니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이름을 지었으니 ‘어풍대’이다. 물론 내가 감히 최고운, 이목은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뜻을 따를 뿐이다(古今遊賞者多矣。?無名稱。豈非一大欠事。因名之曰御風臺。非敢自擬於牧老崔仙也。聊寄意耳).”

이후 울산의 각종 읍지(邑誌) 등에 어풍대의 지명이 전해져 온다. 『학성지』에는 “목성(牧城) 안의 일산포(日傘浦)에 있다. 작은 언덕이 바다에 닿아 있어서 안계(眼界)가 확 트이는데 오륙십 명이 앉을 수 있다. 어풍대라 이름한 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대개 ‘열자(列子)가 영연(?然)하다’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돈대의 북쪽은 뭍이 이어지고 남쪽은 바다이다. 돌산에는 구멍이 뚫려서 배를 감출 수 있는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열자(列子)가 영연(?然)하다’는 것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서 ‘…열자는 바람을 타고 가니 그 모양이 가볍고, 기묘하여 좋다(夫列子 御風而行)’라고 한 것을 말한다. 어풍대는 여기서 땅이름이다.

‘어풍대’- 김안국(金安國)의 詩(송수환 역)

“隱約三山在眼前 삼산은 어렴풋이 눈앞에 펼쳐있고/ 彎簫??下雲邊 신선들 피리소리 구름가에 내리는 듯/ 冷然欲御長風去 훌쩍 소리 없이 바람 타고 떠나가/ 脫?人間萬事捐 인간만사 헌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싶어라.”

‘어풍대(題御風臺)’ 도신수(都愼修) 작. (송수환 역)

“雨過靑山頭 비 지난 청산 봉우리에/ 烟生白鷺羽 백로 깃털 같은 안개 피어나고/ 長風驅盛浪 긴 바람이 거센 파도 몰아오니/ 落日打漁舟 지는 햇살이 고깃배에 쏟아지네.”

방어진 12경 중 제5경에 나오는 ‘어풍귀범(魚風歸帆)’의 경승지가 바로 ‘어풍대’로 돌아가는 돛배와 주변 풍경을 이르는 말이다. 이곳에서 옛날 선비들이 시화회 등을 열어 많은 시(詩)를 남겼다.

장세동 울산지역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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