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헌(固軒) 추모의 밤’
‘고헌(固軒) 추모의 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0.0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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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강’의 꼬리표를 단 태풍 ‘차바’가 심술을 나흘째 부리던 지난 7일, 이날 저녁만큼은 심술이 비켜가는 듯해서 좋았다. 그러나 그 심술보는 간선도로 위에서 양껏 터지고 있었다. 상방사거리를 비롯한 북구 관내 도로들은 극심한 차량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행사장 도착은 ‘시오 분 지각’ 딱지를 받고서야 겨우 허락받을 수 있었다.

북구 송정동 역사공원지구에 외딴섬처럼 남아있는 독립운동가 고헌(固軒) 박상진 의사의 생가. 본채의 좁은 안마당에 차려진 가설무대와 100개 객석이 추모의 분위기를 짐작케 해 주었고, 관객들의 표정들도 점차 숙연하고 진지하게 변해 갔다.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 추모의 밤’. 이날 행사는 추모사업회(회장 박대동)가 북구문화원(원장 박기수)에 맡겨 추진했고, 기념식과 공연 두 가지 순서로 나눠 진행됐다.

무엇보다 눈길이 간 곳은 안내 팸플릿에 적힌 두 편의 자작 한시(漢詩).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기 두 해 전인 1917년, 만주 부사령으로 파견되는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을 떠나보내는 전별연에서 박상진 의사가 지었다는 ‘전별시(餞別詩)’가 그 첫째다. “鴨江秋日送君行 快許丹心誓約明 匣裏龍泉光射斗 立攻指日凱歌聲(=가을 깃든 압록강 너머 그대를 보내매/ 쾌히 내린 그대 단심이 우리들 서약 밝게 해주네/ 칼집 속의 용천검 빛 북두성에 이르겠네/ 이른 시일 내 공을 세워 개선가 불러보세). 다음은 전별시보다 더 많이 알려진 박 의사의 옥중절명시(獄中絶命詩)다. “難復生此世上 幸得爲男子身 無一事成攻 去 靑山嘲綠水嚬(=다시 태어나기 힘든 이 세상에/ 다행히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건만/ 이룬 일 하나 없이 저 세상 가려하니/ 청산이 비웃고 녹수가 찡그리네).” 두 편 모두 옷깃 여미게 만드는 애국(愛國)의 시편들이었다.

순서에 따라 박대동 추진위원장(전 국회의원)이 추모의 글을 먼저 올렸다. “위대한 독립투사 박상진 의사께서 순국하신 지 벌써 97년… 추모의 밤이 우리 민족의 정기와 자긍심이 되살아나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박 의사의 재종질(再從姪=육촌형제의 아들)인 박종해 시인(전 울산예총 회장)은 ‘영웅의 강림’이란 추모자작시를 헌시(獻詩)로 바쳤다. “조국이 바람 앞에 등불 같을 때,/ 그 등불 온 몸으로 지키시다가/ 순국하신 위대한 호국 영웅이신/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님/…아! 시대의 선각자요/ 애국애족의 영웅이시여!/ 이 혼란한 조국에 강림하시어/ 조국이 나아갈 길을 밝혀 주옵소서/…”

지전춤(춤꾼 김남순), ‘오페라 박상진’과 ‘오페라 김좌진’의 아리아(성악가 김정권·정아름), 민요마당(여명숙 등 3인)도 그 뒤를 이어 추모의 온도계를 한껏 높여 나갔다. 그 다음 기다리는 것은 생가 앞뜰에 마련된 뒤풀이 잔칫상. 때맞추어 다시 시작된 빗줄기의 심술에 박기수 원장이 밝은 풀이로 응대한다. “8시까진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는데 하늘도 무심치 않으신 모양이지요.”

김밥과 떡과 부추전에다 막걸리까지 나와 흥을 북돋운다. 어둑한 조명 속에서 이야기꽃이 만개한다. 거나해진 박종해 시인이 청산유수의 언변으로 박 의사 선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박 의사 생가 관리를 책임지면서 박 의사 숭모 사업에 통째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박 의사의 증손 박중훈 선생은 정작 입을 다물어 대조적이다.

박상진 의사와 관련된 장식물 몇 가지는 교체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개진된다. 박 의사의 실제 인상을 그르치게 하는 생가 사랑채 벽면 등지의 기록화와 본채 벽면에 걸린 서툰 솜씨의 서예작품(‘절명시’), 그리고 ‘송정 박상진호수공원’ 벤치에 걸터앉은 어설픈 모양새의 조각작품이 술안줏감이 된다. 때마침 좌중에 동석 중이던 서예가 김옥길 선생이 넌지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고헌 박상진 의사 추모의 밤’은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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