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노벨상
포스트모더니즘과 노벨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2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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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정리하는 기준 중에는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윤곽이 드러나는 노벨상 후보의 선정과 시상이 한 몫을 차지한다. 이 무렵이 되면 국가적 경제력에 비해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너무 적은 우리나라는 답답함에다 갈증까지 더해진다. 그래서인지 6~10년 내에 기초과학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고, 매년 그렇듯이 올해도 노벨문학상 후보자가 또다시 거명될지도 모른다.

조급함은 설익은 과일을 만지다가 낙과하고 마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가 있다. 모르긴 해도 노벨상 수상자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노벨상을 타기 위해 작품을 쓰거나, 연구를 하거나,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바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큰 바위 얼굴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노벨상 수상 분야의 학문을 전공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노벨상을 탄 사람이 있다. 유태인계 미국인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라는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로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이 때문에 심리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최초의 인물이라 해서 화제가 된 주인공이다. 주류 경제학에 대항하기보다 좀 더 세밀한 인간의 심리와 가치와 문화가 가미된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학을 개척한 공로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필자도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그의 저서를 읽은 적이 있다.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일리 있고 타당성 있는 논리로써 인간의 심리학적 경제학에 접근한 어려운 경제학 저서이지만 참 재미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급격한 산업 발전으로 세계 경제대국에 들어온 우리나라인 만큼 노벨상에 대한 욕심이 당연히 생길 만도 할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우리나라는 1명뿐이지만 이웃 일본은 24명으로 비교가 되지도 않는다. 또한 수상자 24명 가운데서도 수도권의 명문이라는 도쿄대학교 출신은 7명인 데 반해 전국 지방대학 출신은 골고루 섞여 있어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수도권 대학 집중화 현실과는 너무도 대비되어 묘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지금 집중화, 체계화, 합리적 방식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에 반발하여 생겨난 철학 사조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개방화와 창의적, 개인적 성향을 중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모더니즘적 가치와 생각과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행동경제학은 이런 사상적 조류를 경제학에 접목시켜 사람을 관찰한 끝에 정리해서 완성한 학문이다. 어쩌면 당연하고 이해가 되는 상황을 경제학적으로 해석했다는 표현은 필자의 일천한 지식을 드러내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 이론은 사람이 그저 단순한 교육만으로 만들어지거나 합리적 이론으로 양육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계량화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좀 더 자유를 주면 엔트로피가 커지면서 창의적 사고와 창조적 활동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알고, 내가 보고, 내가 들은 것만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우등생만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되어 가지 않을까.

인생의 목적이 성공이고 연구의 대가가 노벨상에 있다면 그것은 출발부터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향평준은 잠시의 평온은 있을지 몰라도 오랜 평화를 맛보지는 못한다. 질서 있는 자유, 책임 있는 권한, 기초학문 위의 응용기술, 목적이 있는 삶이 어쩌면 공존할 수 없는 단어와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단계를 넘어서야 우리의 경제와 정치와 과학과 우리의 생활에서 기대하지도 않는 노벨상보다 더 행복한 미래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 연구센터장 /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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