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걷고 달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는 걷고 달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2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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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생리학상에의 도전 ④>
우주 나이 138억 년, 지구 나이 46억 년, 진핵생물의 출현 22억 년 전, 공룡의 멸종 6천5백만 년 전…… 이렇게 나열하면 억이라는 숫자에 무감각해진다. 현생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시기는 많은 학설이 있지만 대체로 200만 년 정도로 보고 있다. 비교해보면 우주에서 우리 인류의 출현은 일천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영생을 살아온 것처럼 착각하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고자 안간힘을 쓰곤 한다.

인류 최초, 최대의 혁명인 정착농경이 시작된 것은 불과 8만 년 전이다. 200만 년 중에 96%에 해당하는 192만 년 동안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의 왕국에서처럼 야생으로 살았다.

필자가 대학원에서 동물성장생리학을 공부해보고 마라톤과 등산을 해보니 지금 지구의 육지에 대형 포유류 대부분이 인간이라는 단일 종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유가 짐작된다. 살아남을 때까지 끈기 있게 달리고 또 달린 결과물이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리학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필자는 이러한 이론 생물학의 근거를 만들고 그것을 증명한다면 우리도 노벨 생리학상을 탈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이렇게 펜을 들어본다. 천체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이 이론물리학이듯이…

지금부터 아득한 야생인류의 세계로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열대 우림지역, 끝없는 사바나 대초원의 사막이 펼쳐진 무대에는 두뇌가 발달한 대형 포유류인 원숭이, 고양잇과 갯과(Family) 동물들이 경쟁하면서 살고 있었다. 타고난 능력의 소유자인 고양잇과 동물들은 지역에 따라 달리기의 명수 치타와 나무타기 잘하고 힘이 센 표범, 삼림의 왕 호랑이, 대초원의 황제 사자가 있었다. 갯과 동물로는 늑대, 들개, 하이에나 등이 대표적이었고, 이들은 무리사냥으로 고양잇과 동물과 경쟁하면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반면 이들 동물보다 연약한 원숭잇과의 동물은 이들의 영역에서 한 발 벗어나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나무타기에서 만들어진 앞다리가 정교한 분화로 새로운 기능을 지닌 손이 되었고, 나무를 타면서 직립할 수 있는 골격구조가 발달하였다.

이렇게 되자 머리는 정면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두뇌의 발달과 구강구조의 변화로 말을 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원숭잇과는 고양잇과, 갯과보다 미진한 신체구조를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진화시켰다. 원숭잇과 동물들은 나무의 열매를 주식으로 했기에 비타민C가 영장류들만 필요로 하는 필수 영양소가 된 것이다.

사건이 났다. 나무에 있을 때는 비교적 안전했다. 그러나 욕심으로 많이 먹고 몸집이 점점 커져 나무 위에선 생활하기 힘들어진 개체가 생긴 것이다. 그러다보니 땅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나무에서 내려오자 육식이면서 동작이 빠른 고양잇과와 갯과의 집중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때론 나무 위로 도망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와 생활했다. 시간이 흘러 점점 더 무거워져 이젠 지상의 동굴과 같은 은신처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나무를 타면서 손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지상에서 불을 사용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고양잇과, 갯과 동물에 대항할 수 있는 중요한 방어수단 중에는 나무 타는 능력과 불을 사용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능력의 진화 중에서 오늘날 인류가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이루고 지구촌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체온’을 유지하는 수단인 ‘털’이 없는 원숭이가 되려는 노력 덕분이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 가장 현명한 방법은 오로지 달리기였다. 죽기 살기로 달려도 일부는 희생이 되곤 했다.

살아남은 자는 땀샘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고 또 달린 결과 땀샘발달이 현저했다. 그 결과 체온 유지가 가능해져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몸이 된 것이다. 때론 털이 없어 보온이 절실할 때는 불을 이용하는 능력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고양잇과, 갯과 동물과 인간이 지상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은 조금은 비겁한 것 같지만, 결국은 ‘삼십육계’가 최선이었다. 이기는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최후에 살아남은 자가 이긴 것이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과장 /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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