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 따라 한걸음, 이야기 따라 한걸음…
파도소리 따라 한걸음, 이야기 따라 한걸음…
  • 최상건 기자
  • 승인 2016.09.2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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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리 울산 동해안 명소
▲ 강동 몽돌해변.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象圖)라는 그림이 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작자 불명의 이 그림은 육당 최남선이 1908년 11월 ‘소년(少年)’ 창간호에서 그린 한반도를 호랑이로 표현한 그림과 비슷하다.일제 때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한반도 지형을 보고 ‘한 마리 토끼 같다’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반박 차원의 그림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호랑이의 꼬리가 시작되는 부분, 울산의 동해안이다. 이 곳을 출발점 삼아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라고 파도소리를 표현한 최남선의 시와 함께 30리에 걸쳐 펼쳐진 울산 동해안 명소를 찾아가 보자.

◇ 호랑이 꼬리의 시작. 검푸른 바다의 신명·강동·정자해변

울산 도심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경주 경계선 바로 아래, 울산 동해안의 끝자락인 북구 신명동이 있다.

신명교차로에서 해안도로로 내려오면 검푸른 동해 바다를 품은 아담한 해안가가 반겨준다.

해안 길이 약 3㎞로 펼쳐진 신명·강동·정자해변은 하늘에서 바라보면 갈매기가 날개를 펼친 모양이다.

이곳 해안에는 해수욕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하얀 모래가 아닌 동글동글한 ‘몽돌’이 깔려있다. 이 때문에 파도가 칠 때면 바닷물이 돌을 때리는 소리와 바닷물에 이리저리 밀려나가는 작은 몽돌들이 내는 소리가 이색적으로 들린다.

갈매기 모양 해안가에 깔린 몽돌을 밟으며 걷다보면 해안가 중심에 ‘강동화암 주상절리’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주상절리란 단면이 육각형 또는 삼각형으로 된 긴 기둥모양의 바위가 겹쳐져 있는 특이 지질이다.

강동화암 주상절리는 약 2천만년 전 분출한 현무암 용암이 냉각하면서 열수축 작용으로 생성된 냉각절리다. 동해안에 나타나는 용암 주상절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2003년 4월 24일 울산시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됐다.

이 주상절리 인근 부락을 화암(花岩)마을이라 하는데 현무암이 꽃처럼 펼쳐진 바위가 있는 곳이란 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마을을 지나 남쪽으로 향하면 몽돌해변 끝자락에 정자항이 있다. 정자(亭子)는 오래전 이 마을 가운데에 24그루의 느티나무(포구나무) 정자가 있어 지명을 얻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정자항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면 정자 활어 직판장이 나타난다. 청정해안 정자 앞바다에서 잡은 자연산 회가 풍성하다. 정자에는 전통적으로 문어와 가자미가 많이 잡혀 시가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싱싱한 회를 맛 볼 수 있다.

 

▲ 곽암(藿巖) 미역바위.

◇ 선조들 이야기가 서려있는 바위, 곽암(藿巖)

정자항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판지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 앞 바다 속에는 곽암(藿巖)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미역바위라는 뜻인 곽암은 ‘양반돌’, ‘박윤웅돌’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름에 얽힌 재밌는 사연이 내려온다.

1937년에 간행된 ‘흥려승람(興麗勝覽)’에 따르면 박윤웅은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울 당시, 협조한 공로로 정5품 흥려백에 봉해졌다고 한다. 또 박윤웅이 살던 고장인 울산은 ‘흥려부’로 승격됐다. ‘흥려’라는 말은 고려(高麗)를 흥성(興盛)하게 했다는 의미다.

‘학성지’와 ‘울산박씨세보’에 의하면 그때 박윤웅은 왕건에게 동진(현재 북구 농소와 강동) 지역 미역바위 12구를 하사받아 미역채취권을 가지게 됐다.

이후 조선시대 영조에 이르러 울산박씨 문중이 독점 중이던 미역바위에서 미역을 채취 할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가 잇따르자 어사 박문수가 12구의 미역바위를 국가로 환수했다. 이후 미역바위에 미역이 자라지 않자 그 중 한 구를 다시 박씨 문중에게 돌려줘 일제 강점기까지 소유권이 이어졌다고 한다.

박문수는 이곳 판지마을 앞바다 속 곽암에 박윤웅의 공훈을 기리며 ‘윤웅(允雄)’이라는 글자를 새겼는데 현재는 확인 할 수 없다.

곽암을 떠나 남쪽으로 3㎞를 더 이동하면 당사항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최근 증축을 마친 당사자연산직판장과 스카이워크로 불리는 당사해양낚시공원이 있다.

북구 당사동 508번지에 위치한 낚시공원은 동해바다로 약 200m 뻗어 나간 다리 형태로 바닥이 뚫려 있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정자 일출.

◇ 붉은 땅의 고장 ‘주전(朱田)’

당사해양낚시공원에서 동해안로로 나와 남쪽으로 약 1.2㎞를 이동하면 강동 몽돌해변과는 조금 다른 주전몽돌해안이 나타난다.

주전(朱田)이란 지명은 ‘붉은 땅의 고장’이란 뜻인데 실제로 주전 마을 일대 땅 색깔은 붉은 빛을 띠고 있다.

2011년 국토해양부가 추진한 해안마을 경관형성 시범 사업에서 나온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주전 서쪽의 일대 산들을 ‘새바대’, 가장 높은 봉우리를 명자산(明自山)이라 한다.

지명에‘밝다’라는 뜻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는 점으로 미뤄보아 붉은 땅이란 뜻뿐만 아니라 ‘밝은 밭’, 주위가 탁 트인 넓은 곳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울산 12경 중 하나인 주전해안은 약 1.5㎞의 해안에 새알같이 자그마한 몽돌로 이뤄진 해변이다.

이곳에는 직경 3~6㎝의 자갈 같은 몽돌들이 아기자기하게 깔려있어 울산뿐만 아니라 타 지역 관광객들도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전 아랫마을에 위치한 수 백 미터 길이의 해안인 ‘큰불개안’은 검은 빛을 띠는 자그마한 몽돌들로 덮여 있어 수석 애호가나 수집가들이 모여드는 명소기도 하다. 큰불개안이란 길고 넓은 포구가 있는 해안이란 뜻이다.

이외에도 바닷물에 잠겼다 나타났다 하는 ‘깜박덤’, 바위들이 듬성듬성 널려있다 하여 ‘듬벙개’,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에게 이곳에서 채취한 미역을 바쳤다는 ‘동수암(洞首岩)’ 등 재미난 이름의 돌들이 주전해안 곳곳에 있다.

올해 추분(秋分)에서 하루가 지났다. 24절기 중 16번째인 추분이 되면 길었던 낮의 길이가 밤과 같아진다. ‘추분이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는 속담처럼 농부들은 들판의 곡식을 거두고 다가올 겨울을 대비한다. 농경사회를 살았던 우리 옛 조상들은 추분에 작은 비가 내리면 길(吉)한 일이 생긴다고 여겼다.

지진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이지만 자연 앞에선 한 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몇 주였다. 하지만 인간 역시 대자연에 속해 있다.

자연에게 받은 상처는 자연을 통해 치유를 받아야 한다. 가을의 초입(初入)인 이번 주말, 넓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길(吉)한 기운을 받아보면 어떨까.

최상건 기자

▲ 강동화암 주상절리.
▲ 당사해양낚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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