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기업 이어주는 가교 역할이 새로운 꿈”
“대학과 기업 이어주는 가교 역할이 새로운 꿈”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09.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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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만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27일로 6년 임기 마감… 새 인생설계

빨간 희망의 아이콘 ‘사랑의 열매’와 함께 내방객을 맞이하는 것은 엘리베이터 벽면 일부가 되어버린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 다 실바’의 어록 판이다. “나눔은 비용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얼마 전 남구 신정동 우양빌딩 5층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느낌이 남다른 영국신사풍의 외모, 그리고 그 특유의 살인미소는 옛날 그대로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다. 눈에 띄게 핼쑥해진 그의 얼굴이다. 이유가 궁금했다.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울산시교육감(제5대, 2007.12∼2010.6)으로 재임할 때 지병(심장질환)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지요. 좀 쉬어가야겠다 싶은 생각에 식습관에 변화를 주었는데, 고기(육류)는 멀리하고 식단을 온통 채식 위주로 바꾸었지요.”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건강이 회복된 것이다. 78kg까지 나가던 체중이 63kg으로 현저히 줄었다. 제 7, 8대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2010.9∼현재) 직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 것도 되찾은 건강 덕분이었다고 그는 믿는다. 재임으로 ‘만6년 근속’의 또 다른 이력이 붙게 된 김상만(73)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그의 제8대 회장 임기는 오는 27일로 끝을 맺고, 그 다음날(9.28)은 새로 선임될 제9대 회장과 함께 이·취임식을 갖는다. 그 이후의 새로운 인생설계가 아직은 물음표로 남아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6년 새 15배 증가

기업체 사회공헌→개인기부 ‘인식 변화’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온 6년이었다. 금석지감과 만감이 뒤엉킨 채 교차하고 벅찬 감회가 온몸을 감싸 안는다.

“제가 7대 회장에 취임했을 때만 해도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12월 설립한 개인 고액기부자 클럽) 울산 회원은 4호까지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60호가 탄생했습니다. 1년에 약 10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셈이지요.”

‘1억 기부자’ 4명이 60명으로 불어났으면 6년 새 무려 15배나 급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화 도중, 실내가 후텁지근했던지 정중히 양해를 구한다. “좀 벗겠습니다. 같이 벗으시죠.” 양복 윗도리를 옷장 속 옷걸이에 먼저 건 다음 필자의 윗도리도 손수 받아서 건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만큼 구김살 없는 성격이기도 하다.

울산공동모금회 회장직 연임 6년 사이의 세태 변화가 어떠했는지도 궁금했다. 격세지감에 대한 자상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때만 해도 ‘공동모금’ 하면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업체 임원이나 이름을 걸고 하는 기부행위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임원이든 직원이든 소득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된 덕분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동안 사회의 도움을 받아왔으니 내 소득의 어느 정도만큼은 사회를 위해 베풀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개인적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나 할까요.”

따지고 보면 기부문화가 오늘처럼 활짝 꽃피우게 된 것은 기업체 임직원들의 기여에 힘입은 바 크다. 사실 기업체들은 해마다 법인예산 편성 시기가 오면 ‘올해 기부금은 얼마’ 하는 식으로 계획부터 먼저 세우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 있다. 기업체 임원은 물론 직원들도 각자의 호주머니 사정에 맞춰 개인예산을 미리 짜 두는 경향이 늘었다. 김 회장이 이러한 기부문화 변화의 추이를 수치로 실증해 보인다. 자신의 7대 회장 초기와 8대 회장 말기를 대비한 결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전체 모금액을 세분해서 보면, 기업체가 70%에서 60%로 줄어든 반면 개인은 20%에서 30%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납니다. 나머지 10%는 공공기관이나 사회단체의 몫이라 보시면 되겠고요.”

개인기부 활성화 효자노릇 ‘천사계좌’

김 회장은 ‘잘 사는 도시’ 울산의 기부문화가 ‘전국 제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다. 1인당 기부금액으로 치면 전국 제일이고, 기부총액으로 따져도 서울, 부산, 대구 다음이란 이유를 내세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기부총액 면에서 대전이나 광주보다는 여전히 우위에 있지만 얼마 전부터 인천에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그는 ‘기업 사정’에서 찾는다. 기업경기의 퇴조가 곧바로 목표모금의 차질로 이어진다는 진실을 뼈저리게 체득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그래서 눈길을 ‘개인’ 쪽으로 돌리기로 마음먹는다. ‘개인기부 활성화’를 통해 만회해 보자는 것이다. ‘풀뿌리 기부’의 싹은 이러한 발상의 전환에서 트기 시작한다.

“작년부터 개인기부 활성화 캠페인에 주목했지요. 기업이 못다 채워주는 부분을 봉급생활자들의 도움으로 채워 보겠다는 뜻이 숨어있었습니다.”

공동모금회를 같이 이끌어가고 있는 분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나온 구상은 ‘우수리 기부’였다. ‘봉급의 끝전’을 기부금으로 희사하게 하는 방법이다. 의외로 성과가 좋았다.

그 뒤로 또 다른 구상을 실천에 옮겼다. 자영업자도 시장상인들도 흔쾌히 동참하고 있는 이른바 ‘착한 가게’ 가입 캠페인이다. 처음엔 올해 초 울주군 청량면에서 스타트를 끊었지만 요즘은 남구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다. 2016년 8월 말 기준으로 울산지역 착한 가게 수가 서울(1천881개)을 제치고 1천900개를 헤아리고 있으니 2천개를 기록할 날도 멀지 않은 셈이다. 그 중에서도 남구의 착한 가게가 1천250개(65.8%)를 차지한다. 이 숫자는 남구 전체 호수의 3%가 ‘착한 가게’에 가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덕분에 남구 주민들은 ‘전국 최고’의 자긍심도 덤으로 얻게 되었다. 남구의 이처럼 돋보이는 실적은 ‘단체장의 열정이 기부문화 확산을 좌우할 수 있다’는 교훈을 김 회장에게 심어주게 된다.

이번엔 ‘천사(1004)계좌’라는 한 발 더 앞선 아이디어가 선을 보이게 된다. 전국 초유의 독창적 구상이라고 했다. ‘1004(천사)’란 숫자 그대로 1계좌가 월 1천4원이고 3구좌면 월 3천12원이다. 그러나 결코 얕잡아 볼 일이 아니다. 김 회장이 그 이유를 말한다. “한 번 내는 기부금액이 너무 많으면 계속 내기가 힘들어지겠지요. 하지만 액수가 적으면 한결 수월해질 것 아닙니까?”

‘지속적인 기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호재들이 한꺼번에 모이고 쌓이다 보니 ‘개인기부 활성화’는 이제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고, 갈수록 그 위력이 커져만 간다.

‘착한 기업’ 가입 캠페인도 있다. 이 캠페인은 김 회장이 ‘착한 가게’ 아이디어를 기업에 접목시킨, 역시 주목할 만한 사업 중의 하나다. 2천개가 넘는 울산상공회의소 회원기업 가운데 약 140개 기업이 이 사업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중소기업들도 어렵잖게 참여할 수 있도록 연간 기부금액을 100만원으로 바짝 낮추었다. ‘착한 기업 사업’의 출범식은 지난 연말 MBC컨벤션홀에서 가졌다. 기업체 독려는 울산상의가, 홍보는 KBS울산이, 기금 관리는 공동모금회가 맡기로 약속하고 3자가 손을 잡았다. 이 사업이 알려지면서 ‘좋은 사례’라며 노하우 전수를 요청하는 지방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학서 ‘생물교육’ 전공한 조류전문가

김상만 회장의 대학시절 전공은 ‘생물교육’이었다. 경북대 사범대학 생물교육과를 졸업했고(1965.2), 경남대 교육대학원에서도 생물교육을 전공하고 ‘조류분류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1987.8).

교직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전공을 살려. 태화강 조류 실태조사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울산경실련 태화강겨울철새학교장(2001∼2004) 이력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울산생명의숲 고문(2003), 녹색에너지촉진시민포럼 공동대표(2005)도 역임했다.

다음은 김 회장이 울산시 교육위원(2006.8∼ 2007.10)으로 재임하던 무렵의 일화 한 토막이다. 어느 여름날, 필자가 그의 집무실(교육위원실) 문을 두들겼다. 김상만 당시 교육위원이 울산에서도 몇 안 되는 조류 전문가라는 소문을 듣고 울산시시설관리공단 직원의 제보가 사실인지 여부를 자문받기 위해서였다.

사진까지 찍어놓았던 시설공단 직원의 주문은, 날마다 새벽녘이면 금붕어를 풀어놓은 울산대공원 연못으로 찾아오는 잿빛 큰 새가 한 마리 있는데 아무래도 ‘재두루미’인 것 같으니 한 번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결론은 김상만 당시 교육위원이 사진을 보는 순간 단박에 내려졌다.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가 아니라 텃새로 남은 왜가리라는 자신감에 찬 결론이었다.

양명학 교수는 초·중·고·대학 동기동창

김 회장의 안태고향은 남구 상개동이다. 그러나 지금은 실향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면서 이주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개운포란 곳 아시죠? 마을이름이 원래 ‘개운’이었고, 나중에 ‘상개운’과 ‘하개운’으로 갈라졌는데 상개운이 하개운보다 더 커지다보니 ‘상개동’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고향마을 사람들,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실향민들이지요.”

그래도 그들은 서로 ‘하개향우회’란 이름 아래 꾸준히 만난다. 100명 남짓. 한동안은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췄으나 지금은 봄, 가을 관광 시즌에 만나 여행길에 옛 추억을 더듬으며 정을 이어가곤 한다.

“모임은 하개경로당에서 갖고 있지요. 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직 옛터 비석이나 망향비 하나 세우지 못했다는 겁니다. 고향 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고.” 그래서 향우들끼리 뜻을 모아 망향비라도 하나 번듯하게 세우는 것이 앞으로 해낼 일이라고 귀띔한다.

대현국민학교(28회)와 울산제일중(7회), 울산농림고교(현 울산공고, 20회)를 차례로 졸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향이 같고 갑장이자 국어교육을 전공한 양명학 울산대 명예교수와는 초·중·고교는 물론 경북대 사범대학까지 줄곧 같이 다녔고 첫 발령지(학성고교)마저 똑같았다는 점이다.

‘대현초등학교 동창’인 5년 연하의 부인 박영자 여사(대현 33회)는 남구 여천동 출생이니 따지고 보면 동향인이나 마찬가지다. 김 회장은 박 여사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공동모금회 회장직 그 다음의 밑그림은 아직 확실하게 그려놓은 것이 없다. 그러나 꿈은 버리지 않고 있다. 현재 이사직을 맡고 있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을 발판으로 다방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은 꿈이다.

“울산시와 대학, 그리고 대학과 기업을 연결시켜 주는 가교 역할 같은 것 말입니다. 고급두뇌를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 일조한다면 여러모로 유익하고 보람이 있겠지요. 지역 발전, 교육 발전을 위한 심부름꾼도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에게 들려줄 조언 몇 마디를 청했다. 그는 ‘적성에 맞는 진학과 일자리’를 거듭 강조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 ‘일등이 되라’는 말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대학교를 이름만 보고 가다가는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직업은 어느 것이 나쁘고 좋고가 없습니다. 적성에 맞추어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고, 주어진 자리에서는 최고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한 울물을 파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기주의보다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을 희망했다. 지역사회와 교육계를 향해서는 ‘덕성교육’ ‘인성교육’을 주문했다. 김상만(金相滿). 그는 잠시 교사와 교장, 교육위원, 교육감 시절로 되돌아가 있는 느낌을 들게 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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