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과 느림의 삶
기다림과 느림의 삶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2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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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배지 않는 위생종이에 포장된 햄버거 하나를 양손에 잡고 찬찬히 종이를 벗겨낸다. 입안을 있는 대로 크게 벌려 어느 정도 선까지 넣는다. 상악과 하악을 부딪혀 일부분을 잘라 씹어먹는 맛의 앙상블. 게다가 콱 쏘는 콜라까지 보태면 햄버거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이렇게 맛있게 먹는 ‘맥도날드 햄버거’. 그것의 성공비결은 아마도 ‘맛’보다 ‘신속함’일 것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90초 내에 주문을 처리하던 것을 2010년부터는 60초로 줄였다. 고객의 주문에서 손으로 전달하기까지 균질한 햄버거를 1분 만에 내놓았으니 그 신속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90년 1월 구소련이 붕괴되기 전 모스크바에 맥도날드 1호가 개점하는 날, 당시 세계 언론에 주목받았던 일이 있다. 개점 당일 5천여 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던 사실이다. 아마도 그 당시 사람들은 배급을 받아야 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줄을 잘 선다는 선입감도 들었지만 하여튼 엄청난 토픽 감이었다.

그것과 달리 2016년 7월 유례없이 더운 날, 한국 강남1호점을 오픈한 일명‘쉑쉑(Shake Sack) 버거’는 분명히 신속함의 것이 아니고 ‘느림’의 슬로건을 내건 것이다. 햄버거 하나 먹자고 1천여 명이 뙤약볕에서 2시간 이상 기다린 사실은 무엇을 말하겠는가.

2002년 뉴욕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카트 하나로 창업한 쉑쉑버거는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사용하지 않은 소고기품종 앵거스비프(Angus Beef) 등 최상급의 식재료를 사용했다. 게다가 ‘후한 대접(Hospitality)’ 문화를 바탕으로 한 세심한 서비스를 앞세워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글로벌기업이다.

아무튼 미식가들이 2~3시간씩 기다리는 이유는, 기다림으로써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면, 자기 자신이 특별한 취향의 소유자임을 남에게 과시하게 되고 동시에 자신에게 자기암시도 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경영학자 마이스터(D. Maister)는 ‘기다림의 심리학’에서 값진 서비스를 위해서라면 기다릴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환자들이 오래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기다리는 만큼 자신의 순서가 되었을 때 자신도 증상에 대해서 의사에게 자세히 질문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안다. 그러면 기다리는 일에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나 홀로 기다림’은 함께 기다리는 것보다 더 지겹다고 한다. 즉 동질감(sense of group community)을 갖고 함께 기다리면 지겨운 심리를 덜 느낀다는 것이다. 시골의 한 병원 대기실에서 옆 환자에게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라고 서로 물어보며 기다리는 것도 지겹지 않게 느끼는 묘한 심리라는 것이다.

수년전에 종영된 울산MBC TV의 ‘달팽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슬로우 라이프 걷기 프로로 ‘느리게, 다르게, 행복하게’라는 부제가 붙은 것이다. 말 그대로 달팽이의 움직임으로 바라다본 인간세상 모습을 아름답게 조명했다. 길 위에서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를 보았고 길 위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시에 울산 부산 경남 경북 등 지역별 걷기 코스를 개발하여, 중장년층에게는 지역의 자연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아련한 옛 추억을 되살리고, 젊은 층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구성지게 전달하는 매력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이제 우리는 ‘신속함’ 이상으로 삶의 질을 중시하는 ‘느리게 살기’의 가치에 관심을 두었으면 한다. 신속함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결함을 보이는 것보다 ‘기다리고, 느리게’ 여유 있는 삶을 영유하면서 보다 행복한 삶을 즐기면 어떨까.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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