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다닐 수 있는 공간 찾기’
‘놀러 다닐 수 있는 공간 찾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1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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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여름휴가지로 울산의 십리대숲과 대왕암공원을 다녀간 뒤로 울산을 찾는 관광객이 부쩍 늘고 있다니 매우 반가운 일이다. 때마침 내년(2017)은 ‘광역시 승격 20주년’, ‘울산 방문의 해’이자 ‘아시아조류박람회(ABF; Asian Bird Fair)’까지 열리는 해여서 울산 관광의 기상도는 ‘매우 밝음’이다. 더욱이 김기현 울산시장이 “십리대숲과 대왕암공원을 국보285호 반구대암각화, 대곡박물관 등과 연계해 동해안 최대의 힐링 관광상품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으니 거는 기대가 크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관광명소로 내세울 만한 곳들은 그 역사와 전통이 대체로 깊고 풍부하다. 미국이 그들의 역사와 전통을 억지로 만들어 가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지만 이처럼 자랑스러운 공간들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KBS ‘해피선데이 1박2일-하얼빈을 가다’ 또는 무한도전의 ‘일본 하시마섬을 가다’와 ‘우토로 마을’ 등 몇몇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되는 건 아닌지 하는 조바심 탓이다.

공간 보존에 대한 우리의 무지함은 삼풍백화점 사건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그곳에 수백 명의 영혼을 추모하는 위령의 장소가 들어서기는커녕 고가의 고층아파트가 순식간에 세워져 투기장소로 둔갑하지 않았던가. 이뿐만이 아니라 304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고 실종자의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려면 선체를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객실 부분을 잘라내는 ‘객실 직립 방식’으로 실종자를 찾겠다고 발표해 유족들의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았다. 끔찍한 참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체를 원래의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삼풍백화점 참사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사건도 언제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게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두렵다.

우리 역사를 보존하는 증거의 공간이었던 숭례문이 불에 타버렸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울고 흐느끼고 안타까워했다. 우리 역사의 산 증거가 영원히 없어졌다고 생각하며 희망을 잃고 절망했던 것이다. 그나마 경복궁이 문화탐방 일번지로서 우리나라 국민들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Central Park),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Fontana de Trevi), 독일 베를린의 연방의회 의사당(Reichstag), 독일 뮌헨의 카를 광장(Karlsplatz)과 같은 역사적 공간들은 모두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도시의 거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울산시청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시청 앞 광장은 어떠한가? 물론 월드컵 당시 많은 국민들이 그곳에서 함께 환호했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를 부르며 많은 국민이 함께 말춤을 추었고, 겨울이면 아이스링크로 탈바꿈해 시민들에게 개방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벤트들을 진정한 축제로 보기는 어렵다. 진정한 축제란 정치적, 사회적 필요에 따라 펼쳐지는 일시적, 한시적 행사가 아니라 매주 찾아오는 휴일처럼 일상생활에 녹아든 축제여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집은 ‘거주하고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소유하고 물건처럼 사용하고 사고파는 공간’으로 변질된 느낌이 짙다. 최근 몇 년간 서울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도 울산의 한 복지관에서 벌이는 마을공동체 사업에 대해 몇 년째 자문해오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을’의 정의에 단순히 어떤 장소나 공간의 개념을 넘어서서 ‘놀러 다니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마을’이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포괄하는 개념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무주택자, 서민들은 생존권을 무시당한 채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무존재적 삶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시골로 이사 가서 전원주택의 삶을 그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거주하고 살아가는 곳’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흘 혹은 닷새 만에 서는 장날은 아주 훌륭한 축제이자 공간이라 볼 수 있다. 필자도 가끔 장날이면 집 근처에서 열리는 장터를 찾거나 그 옆의 현대화된 재래시장을 찾곤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지역 생활이 축제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마을’이란 정의 속의 ‘놀러 다니는’ 개념을 제대로 살린다면 우리의 삶도 한결 윤택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영미 울산과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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