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場市)와 문화 생성
장시(場市)와 문화 생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1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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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場)은 공간을 의미하고 그 속에는 시간도 포함된다. 시장이라 부를 때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물건을 사고파는 일정한 장소로 시끄러운 곳을 가리킨다. 북적거리는 시장을 ‘도떼기시장’이라 부르고, ‘저자거리’의 풍경을 한자로 ‘시료(市鬧)’라고 표현하는 이유이다.

용이 잠이 들면 가뭄이 든다. 부산함과 시끄러움은 잠자는 용의 심기를 건드린다. 민속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방법은 강 주변으로 시장을 옮겨 잠자는 용을 깨우거나 용의 거처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용을 성가시게 하거나 처소를 더럽히면 용이 많은 비를 내려 응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을 용의 처소라고 믿기에 농부는 이 점을 이용하여 가뭄을 해소시킨다. 가뭄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시장을 강가로 옮기거나(이시移市하거나) 기우제를 지낼 때 징과 꽹과리를 유별나게 시끄럽게 쳐서 소음을 유발시킨다.

한편 시장은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기 때문에 문화의 생성 및 확대·발전에 중요한 장소이다. 시장을 ‘문화 생성의 내밀(內密)한 시원(始原)’이라 표현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고성오광대, 김해오광대, 가산오광대, 통영오광대 등 경상남도 일대에 전승하는 오광대의 시초가 낙동강변의 초계 밤마리(한자는 ‘栗旨’라 씀)장터라고 하는데 사람의 집산(集散)과 왕래(往來)가 많은 곳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사료에는 향시(鄕市), 장시(場市), 장문(場門)처럼 장이 자주 등장한다. ‘장문(場門)’이라는 명칭은 세조 3년(1457년)에 최초로 등장하고, 장문(場門)과 향시(鄕市)는 중종 15년(1520년의 기록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남곤이 아뢰기를, “지금 제도(諸道)에 모두 장문(場門)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신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철저하게 금지했는데도 지금은 전일보다 심하여 시장에 나오는 자가 몇 만 명에 이르니, 이는 모두 농사일에 힘쓰지 않는 사람으로 민사(民事)를 방해함이 심한 것입니다” 하고, 시강관 박수문(朴守紋)이 아뢰기를, “장시(場市)는 근년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남녀 간에 주육(酒肉)을 마련하여 시장에서 팔아 그 이를 취하고 있으니, 근본(根本)을 버리는 폐가 이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장시의 일을 어떤 사람은 편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은 말(末)을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중종실록. 중종 15년, 1520년)

사료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시장은 15세기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울산지역 장날이 기록된 『동국문헌비고』(1770)에 의하면 읍내(邑內-5·10), 대현(大峴-1·6)), 내상(內廂-2·7), 성황당(城隍堂-3·8), 공수곶(公須串-3·8), 서창(西倉-4·9), (언양)읍내(읍내-2·7), (경주)잉보(仍甫-3·8) 등으로 나타난다. 『임원경제지』(1830)에 기록된 울산지역 장날의 중심도 대현(大峴-2·7)과 (언양)읍내(邑內-2·7)이다.

2종의 문헌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울산에서 큰 5일장은 내상(內廂-2·7)과 (언양)읍내(邑內-2·7) 그리고 대현(大峴-2·7)장이었다. 일반적으로 5일장에서 2·7장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중심장이다. 2와 7을 합하면 제일 큰 수인 9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의미를 두고 날짜를 정한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마태복음 11장 16∼17절) 성경에서의 비유는 현실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장터는 고대나 현대에서 많은 것이 생성되는 곳이다.

문화 생성의 시원을 보는 눈이 지역적이면 설득력이 약하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전국에서 천안(千眼)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 장시의 분포와 규모에 따른 문화 생성 사례의 선행연구 결과를 정독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울산의 지역적 장시의 분포와 규모를 역사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부화뇌동하는 서포터나 팔랑귀에게는 껄끄러울지 모르나 결국은 지각 있는 이들에게 씁쓸한 미소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문화의 시원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다양한 사료와 자료, 객관적 사고는 물론 도덕적 순수성과 경우 바른 자세도 동시에 갖추기를 당부하고 싶다. 독창적 지역 문화의 시원 및 전승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에서 ‘덕석’을 ‘멍석’으로 해석하는 경우나 그 반대의 경우를 동시에 접할 수 있다.

역사성이 오래된 전승문화의 시원을 장시(場市)에서 찾으려는 객관적 접근은 그렇지 못한 주관적 접근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지난 5월 23일부터 울주민속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울주 오일장 이야기’에서는 그러한 관점의 객관적 자료들을 많이 접할 수가 있다. 관람을 권하고 싶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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