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사나이’ 손영길 장군
‘울산 사나이’ 손영길 장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1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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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생이니 올해로 만 84세다. ‘울산 출신’이라는 것 말고는 울산과의 연관성에 대해 제대로 알아낸 것이 없다. 태어난 동네가 어디이고 나온 초·중·고교가 어디인지, 출생과 성장에 대한 이력은 거의 암중모색 수준이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을 배출한 육사 11기생 즉 ‘정기육사 1기생’이란 사실을….

그는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을 지낸 손영길 예비역 준장이다. 하지만 그는 별 하나(☆) 계급장을 겨우 석 달밖에 달지 못했다. ‘윤필용 쿠데타 모의 사건’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3주간 고문에 시달린 끝에 ‘감방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늘 ‘비운의’ 또는 ‘파란만장한’이란 수식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중앙일보는 10일자 인터뷰 기사 첫머리에서 그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속부관 출신,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든 장본인, 그러나 쿠데타 모의에 몰려 낙마한 비운의 장군…’이라고 표현했다.

손영길 장군이 오랜 그늘을 걷어내고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것은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재심 끝에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덕분이었다. 1973년, 강제로 군복을 벗은 지 실로 42년 만에 되찾은 명예였다. 그런 그가 최근 또다시 ‘뉴스메이커’ 자리에 올랐다. 피울음으로 얼룩진 반세기가 그에게 안겨준 국가배상금 5억원 전액을 모교 육사에 기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그는 이 돈이 후배들의 인성(人性)교육에 사용되기를 희망했다. 왜 ‘지정기탁’을 했을까? 그 이유는 인터뷰 문답(問答)의 행간에서 더듬을 수 있다.

“무죄 판결을 받은 윤필용 사건 때 누가 나쁜 말을 했나?” “전두환이가 그 중의 하나다. 내 둘도 없는 동기한테 배반당했다, 둘도 없는 동기생한테. 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속부관과 청와대를 경비하는 30대대장,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을 하며 한 발 앞서 나간 게 동기들이 질시한 이유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어떤 관계인가?” “전두환이는 나하고 둘도 없는 친구였다. 우리가 소대장, 중대장, 이럴 때는 정의로 국가에 충성을 맹세했다. 전두환이는 사나이다운 면이 있었다. 그런데 (계급이) 올라가면서 사리(私利)가 생긴 것 같다. ‘우리’로 지내다가 ‘나’가 생기고, ‘나’가 생기니 상대인 ‘너’(손영길)로 본 거지.…전두환이 그놈, 야심이 있었던 모양이지. 내게 경쟁심을 가졌던 것 같아.”

인터뷰를 맡은 기자는 ‘전(全) 전 대통령 얘기가 나오자 손 장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질문과 답변은 다시 이어진다.

“군(軍)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만들었다는데.” “…(육사 동기생인) 전두환·노태우·김복동 등과 함께 내가 소령 때(1964~65년) 만들었다. 다들 알고 있는 정치단체가 아니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에 충성을 다하자고 해서 하나회라고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군대를 나간 이후 변한 것 같다. 군인은 정치를 할 수 없다. 정치를 하려면 이중 얼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기 중에 두 사람이 대통령을 했는데….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43년 전 날 모함한 전두환이를 이젠 용서하지만…”이라고 말을 맺는 듯싶었다. 그러나 분을 다 삭이지 못한 탓일까. 말 뒤끝에 꼬리를 남겼다. “그런 (배신) 행위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신의를 배반하는 게 어찌 친구냐. 의리의 사나이라고 하더니 말이야.”

다른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그의 말 속의 ‘배신자’는 복수형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정의와 신의를 끝까지 지키려고 애썼던 것으로 전해지는 ‘울산 사나이’ 손영길 장군.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고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그의 일대기를 울산의 누군가가 나서서 구술(口述)로나마 남겼으면 하는 생각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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