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의 적
내부의 적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6.09.1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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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우리 내부에 있었다.”

이는 1987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이란 영화에서 전장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은 크리스(찰리 쉰)의 긴 독백 가운데 한 부분이다. 올해 임금협상과 관련해 현대차 노조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플래툰>의 길이 남을 이 명대사가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사가 어렵게 마련한 첫 잠정합의안에 대해 일부 현장조직들이 찬반투표를 앞두고 전단지 배포 등을 통해 부결을 선동하면서 노조 내부의 갈등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찬반투표도 엄연히 선거다. 만약 일반적인 선거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선관위가 가만있었을까.

하지만 더 실망스러운 부분은 부결을 선동한 현장조직들의 노림수다. 노동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이번 노노갈등이 내년에 치러지는 노조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일부 현장조직들의 현 집행부 흔들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노조집행부는 지난해 치러진 노조집행부 선거에서 조합원들의 의지로 정당하게 탄생했다. 다시 말해 지난해 말부터 회사와의 협상권을 전적으로 위임받은 상황. 그런 노조집행부가 마련한 잠정합의안을 찬반투표도 하기 전에 재를 뿌린다는 건 투표결과를 떠나 현 집행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잠정합의안의 가결 여부를 결정하는 건 일부 현장조직이 아니다. 4만8천여명의 전체 조합원들이다. 잠정합의안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부결선동이라니. 과연 공정한 투표였나. 게다가 그 속내가 차기 집행부를 노리는 이권 다툼에 있다면 현대차 노조는 감히 ‘진보’를 표방할 수 있을까.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플래툰>에서 크리스가 “적은 우리 내부에 있었다”고 말한 건 베트공보다 더 무서운 내부갈등으로 소대가 자멸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제목인 플래툰(Platoon)은 ‘소대’를 뜻한다. 크리스가 속한 소대는 무능한 소대장 뒤에서 전권을 행사했던 반즈(톰 베린저) 중사와 그의 광기에 반발했던 엘리어스(웰렘 데포) 분대장으로 편이 갈려 서로 싸웠고, 내부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참상을 겪게 된다. 적을 제대로 봤다면 전장에서 미쳐갔어도 서로를 보듬어주며 좀 더 많이 살아남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현대차 노조의 적은 회사일까. 그럴 리가 있나. 회사는 이미 한 배를 탄 동지다. 회사가 망하면 노조도 망한다. 그보다 현격한 점유율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는 ‘불황’이 진정한 적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2013년 40.9%의 내수점유율은 올해 8월 들어 33.0%로 떨어졌다.

노노갈등이든 노사갈등이든 궁극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노조든 회사든 결국은 ‘현대자동차’라는 같은 소대이기 때문이다.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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