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동자 남행의 상징적 의미
선재동자 남행의 상징적 의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0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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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덥다. ‘염소의 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도 여름이다. 지구가 태양과 가깝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덥기는 더하다. 여름철새가 매년 북쪽으로 피서 오는 이유다.

선재동자는 선지식을 찾아 불법을 배우는 동자다. 다른 이름 남순동자(南巡童子)는 남쪽으로 순행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권유로 53 선지식을 찾아 나선 구법행각의 남행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불교에서 태양은 지혜로운 자를 상징한다. ‘비로자나’는 ‘만물을 두루 비춘다’는 의미인 편조(遍照)다. 줄이면 ‘태양(日)’이 된다. 해는 ‘어둠을 물리치며 고루 밝게 비춘다’(除暗遍明)는 의미다. 결국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지혜로움을 점점 더 자라게 하는 것을 말한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그 자체가 빛을 말한다. 빛은 지혜를 의미한다. 어둠은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음을 지혜로 증장시키는 것을 방편적으로 설명한 것이 화엄경이다. 결국 <입법계품>은 선재동자를 내세워 53 선지식을 찾아가는 구도적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셈이며, 경(經)의 중심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태양은 적도 부근에서 제일 가깝다. 태양이 진리이자 지혜로 상징될 때 선재동자는 그 진리와 지혜를 찾아 점차 남행하는 것이다. 남쪽의 사례를 살펴본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첫사랑도 흐르네(김수희, 남행열차).

1987년 1월 15일 북한 청진의과대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했던 김만철씨는 새벽녘에 어린 자식들과 장모, 처남, 처제까지 일가족 10명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했다.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20일 일본에 도착,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우여곡절 끝에 2월 8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남한 땅을 밟았다.

김덕명(金德明·1924∼2015)이 추던 ‘지성승무(至誠僧舞)’는 무용극 승무다. 상좌의 꿈속에 나타난 도승이 입적한 스승을 살리는 방법을 가르쳐준 춤이다. 상좌는 재현한다. 입적한 스승이 거짓말같이 서서히 살아났다. 상좌는 도승이 알려준 대로 법고대(法鼓臺)에 홍가사와 먹장삼 그리고 고깔을 걸어두고 뒤돌아보지 않고 남쪽으로 떠난다. 이것으로 승무는 끝을 맺는다. 지성승무는 불교적 승무다. 예술적 승무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승무의 최초 기원설이 선재동자의 구도행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후대 기원설은 구도행각이 누락되었으며 대신 예술적 표현으로 변천됐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남행은 진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비유된다. 불교적 예술 혹은 이 영향을 받은 예술의 본질은 사실이 아닌 진리가 기초를 이룬다. 선재동자 구도행각의 출처인 화엄경이 승무의 최초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삼국유사》의 <낙산이대성 관음정취조신> 조에는 조신이 남쪽으로 가려는 내용이 등장한다. “조신은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였다. 각각 둘씩 나누어 갈라서려고 할 때 아내가 말하기를, ‘저는 고향으로 가겠습니다. 당신은 남쪽으로 가시지요’라고 하며 서로 잡았던 손을 막 놓고 갈라서 길을 떠나려 할 때 꿈을 깼다…(信聞之大喜 各分二兒將行 女曰 我向桑梓 君其南矣…)”

‘이때 문수사리보살이 모든 비구들에게 진리를 깨달아야 된다 하고 권하고는 점차 남쪽으로 갔다(爾時 文殊師利菩薩 勸諸比丘 發阿?多羅三?三菩提心已 漸次南行)’(화엄경 입법계품).

열거한 사례들의 공통단어는 남쪽 혹은 남행이다. 특히 <입법계품>에는 선재동자가 먼저 만난 선지식을 떠나 남쪽으로 가는 ‘사퇴남행’과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운 선지식을 찾아 남쪽으로 가는 ‘점차남행’ 등의 표현이 스물아홉 번이나 반복된다. 남행, 남순 등의 표현은 진리를 찾아 가까이 간다는 의미다. 남쪽을 찾아가는 것은 태양을 찾아가는 것이다. 태양은 지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선재동자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 선지식을 찾아 나섰다. 성경에서도 지혜를 말하고 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잠언 3:14)했다. 민속의 ‘남향 남대문은 삼대적선을 해야 한다’는 속담도 햇빛과 햇볕의 효율적 활용이 겉으로 드러나지만, 그 속에는 불교의 진리를 찾는 사상적 흔적이 녹아있다. 요즈음 아파트의 테라스를 남향으로 인식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조조(曺操)는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코앞에 두고 대취해 <단행가(短行歌)>를 지었다. ‘달빛이 밝으니 별빛이 흐리구나, 오작(烏鵲)이 남쪽으로 날아서 가니(月明星稀 烏鵲南飛)’. 양주 자사 유복(劉馥)은 조조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오작이 남쪽으로 날아가니’ 부분의 시의(詩意)가 불길하다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조는 유복을 칼로 찔러 죽였다. 유복이 입법계품을 먼저 읽어 남쪽의 본질적 의미를 알았다면 조맹덕의 칼에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적벽대전의 우승국도 달랐을 것이다. 악몽도 긍정적 해몽이 중요한 이유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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