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바꾸자, 한가위 날짜
하나만 바꾸자, 한가위 날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0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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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그래도 우리는 기다렸다. 기어이 가을이 올 것이라고, 시인 윤동주는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사람이 살기에 가장 쾌적한 계절 가을이 시작됐다. 애국가 3절 가사도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이 나온다. 미당의 국화 옆에서는 우주 만물의 기운이 봄부터 기나긴 세월을 거슬러 가을에 이르러 생명의 시원(始原)과 결실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수확에 생명이 있음을 직시하고 무한 감사를 올린다.

한자로 가을은 추(秋)이다. 가을에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소 다르게 벼 ‘화(禾)’와 불 ‘화(火)’의 합으로 여름에 불같은 에너지를 먹고 벼가 익어가는 황금들녘을 나타낸다. 진정한 황금들녘은 양력 10월이다. 더욱이 추석이라는 단어는 가을 저녁 즉 가을의 한가운데를 말한다. 우리 한가위의 기원은 신라시대 백중에서 팔월 보름까지 길쌈놀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야외에서 밝은 달 아래 행사를 진행하려면 여름의 온기가 남아있는 음력 8월 15일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가위는 추수감사제다. 추수감사제는 추수를 한 후에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게 해준 자연에 감사를 올리는 것이다. 고유제(告由祭)인 차례는 유교가 도입된 후 그 대상이 구체적으로 조상의 음덕과 가족 친지와 화합을 기리는 세시풍습으로 고착화되었다.

이제 막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공기가 기분까지 상쾌하게 한다. 일기예보에서는 큰 일교차에 감기 등 건강에 유의할 것을 당부한다. 더운 여름에 무성하게 자란 잎이 9월이 되면서 일교차로 열매를 굵어지게 하고 그 속에 단맛을 가득 넣는 과정에 있다. 낮에 강한 햇빛-즉 광합성 작용으로 만들어진 당분이 밤에 저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추석을 100년 주기로 보면 양력 9월에 78회, 10월에 22회 정도이다. 가을 대표 과일인 사과, 배, 감 모두 10월 이후에 수확해야 제 맛이 난다. 사과는 후지, 배는 신고, 단감은 부유라는 품종이 8할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 품종이 우리네 기후풍토에 잘 맞고 수확량이 많아 농가에서 매우 선호한다.

울산에서 나오는 대표적 과일 배의 경우 백화점 등 유통망이 대형화되면서 적어도 판매 15~20일 전에 밭에서 따야 한다. 올해처럼 9월 15일이 추석이면 8월 말이나 9월 초에 수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신고배의 수확적기는 10월 중순이다. 한 달 반이나 앞당겨 조기수확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조치가 뒤따른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지만 자연의 순리에 따라 제대로 익은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한 번 신뢰를 잃으면 추석 이후 배 소비는 급감한다. 단감은 11월 초가 수확적기인데 익지도 않은 감을 억지로 수확해서 제수용으로 쓴다. 햅쌀은 조생종으로 추석에도 일부 생산이 가능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10월 중순 이후에 수확이 가능한 중만생종이다. 이들이라야 수확량도 많고 밥맛 또한 당연히 좋다. 과거에도 추석에는 찐쌀을 만들어 조상에게 햇곡식을 올리곤 했다.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 사람을 “빨리빨리”로 부르곤 한다. 압축 경제성장으로 달리다 보니 외국인 눈에는 그렇게 비친 것 같다. 이제는 모든 것이 정상의 속도로 자연의 시간에 맞출 때가 됐다. 여기서 필자는 감히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목적에 맞게 만들어 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첫째, 추석을 가을의 한가운데 양력 10월에 하되 보름달을 보기 위해서는 음력 15일로 정하자. 이렇게 되면 10년에 음력 8월 15일이 3번, 음력 9월 15일이 7번 정도 될 것이다. 가을운동회 등 각종 축제가 가장 많은 10월에 추수감사제를 함께 해서 더 풍요롭게 하자. 둘째, 쌀 사과 배 감 등 각종 농산물과 과일이 자연에 의해 깊은 단맛이 날 때 추수해서 그 기쁨과 함께 추수감사제를 정성스럽게 올리자. 조기 추석 날짜 때문에 익지도 않은 과일을 “빨리빨리”로 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자연의 시간에 맞추자. 셋째, 무엇보다도 큰 의식행사는 날씨가 9할이라는 말이 있다. 9월에는 아직 태풍이 올 확률이 많다. 과거 추석날 아침에 태풍으로 낭패를 본 사례도 있었다. 추수감사제는 하늘과 땅 모든 것이 안정되었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일 중에 하나이기에 벽공(碧空)이 펼쳐진 10월에 해야 한다. 넷째 지구온난화이다. 여름과 가을이 길어지는 시간과 지구의 온도에 맞추어 나가는 지혜(추석 날짜 조정)가 필요하다. 다섯째 경제 활성화이다. 활동하고자 하는 의욕이 왕성한 계절인 만큼 각종 축제와 연계시켜 고향 경제에 기여하게 하자. 먹고 보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가을 축제장으로 추석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밤새워 계획하고 진지한 토론을 하다가도 ‘날 샜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날 샌 것은 세상이 바뀐 것이다. 수많은 전등불이 밤을 밝혀도 아침에 찬란한 태양이 솟으면 이 모든 것을 대체하고도 남음이 있듯이 추석 날짜 하나만 바꾸면 모든 것이 자연에 순응하며 이 시대에 진정한 민족 최대 명절+축제인 한가위가 될 것이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농업지원 과장 /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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