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제2의 삶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제2의 삶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9.0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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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1980년 재선에 실패해 백악관을 떠날 때 불과 56세였다. 워낙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이른 퇴진이었다. 고향 플레인스의 농장은 관리 부실로 100만 달러가 넘는 빚까지 안고 있었다. 쉽게 잊히지 않는 과거의 존재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한동안 카터는 열패감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툴툴 털고 인생 2막을 새로 시작했다. 목공일의 특기를 살려 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전개했고, 등산에 취미를 붙여 히말라야와 킬리만자로에도 올랐다. 집안 정리, 오디오북 만들기 등 노후에 시도해 볼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나이 드는 것의 미덕(The Virtues of Aging)’이라는 책에서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2013년, 일본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시의 한 양로원에서 숙환으로 숨진 시바타 도요(柴田トヨ) 할머니의 나이는 101세였다. 98세에 처녀시집 ‘약해지지 마(くじけないで)’로 데뷔한 그는 세계 최고령 시인이었다. 90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산케이 신문 ‘아침의 시’ 코너에 우연히 자신의 시가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이 코너 담당자는 솔직하고 따스한 그의 시에 반해 출판을 적극 권했고, 이 시집은 무려 15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쉬운 말로 따뜻한 위로를 담아 낸 그의 시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독자들의 마음도 촉촉이 적셨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살아가며 깨달은 생의 이치를 진솔하게 표현해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동일본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치유와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 준 존재가 됐다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령임에도 굴하지 않고 늦깎이 시인의 길을 걸으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것이다.

이미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Baby Boomer)’들의 ‘제2의 삶’이 이미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들의 관심사는 주로 건강관리나 장성한 자녀의 출가 문제, 노후 대책 등에 모아진다. 그중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것은, 나이가 나이니만큼 무엇보다 은퇴 후 꾸려가야 할 제2의 삶에 대한 설계다. 즉, 건강과 노후자금, 그리고 소일거리 등 갖가지 정보에 귀를 곤두세우며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한 설계에 여념이 없다. 노년에 대한 설계와 준비 없이 제2의 삶을 맞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2의 삶을 여유롭게 보내려면 미리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퇴직 직전에 부랴부랴 준비하려면 이미 때가 늦기 때문이다.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보내겠다는 확실한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돈과 건강, 그리고 본인의 열정이 더해진다면 노후생활은 더욱 풍성하고 보람찬 시간으로 메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은퇴 후는 열심히 일한 젊은 시절의 보상 시기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을 멋지게 일구어 가야 할 시기다.

이런 의미에서 은퇴 후 직업을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직업을 가진 은퇴자가 질병도 적고 기능장애를 덜 경험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이 가져다주는 성취감에서 더 큰 의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후의 일거리 마련을 위한 자기계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자신이 종사했던 일과 유사한 직업을 택할 경우, 정신 건강에도 좋은 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베이비부머의 은퇴자 수는 누적되어 가고 그들이 헤쳐 나가야 할 제2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고령화 사회’를 지나 대한민국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고령 사회’는 머지않아 닥치게 된다. 그러나 ‘유비무환’이라 했듯이, 차분하게 미리 준비하는 자세로 대응한다면 그렇게 걱정스러운 미래는 아닐 수도 있다. ‘은퇴’가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로 차츰 자리매김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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