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의 인연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것”
“울산과의 인연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것”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08.3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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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2015년 9월 1일자 울산제일일보 오피니언 난의 ‘이동구 칼럼’은 이렇게 시작된다. “9월은 무언가 새롭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선선함이 느껴지면서 가을 향기가 퍼지고 학생들은 2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일 게다. 대한민국 유일의 화학 분야 국책연구기관으로 대덕연구단지에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硏)이 둥지를 튼 해가 1976년 9월 1일이다. 내년이면 40살이 된다. 필자는 화학硏에서의 29년 재직 중 울총(울산총각) 생활이 9년째다.”

-중·고 6년 반장에 ‘사립명문 중동’ 자부심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그를 수식하는 직함은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둘만 고르라 하면 그는 서슴없이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과 ‘RUPI(울산석유화학산업 발전로드맵) 사업단장’을 지목한다. 굳이 “하나 더” 하면 ‘울산명예시민증’ 꺼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울산에서 명예시민증은 그의 자부심 증명서와도 같은 것.

그러나 편의상 그를 ‘이동구 박사’로 호칭하기로 한다.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1986)를 마친 후 충북대학교 화학공학과(2003)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인적사항의 베일도 벗겨 보자. 1957년 11월생으로 아직 만 58세라 우긴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나 청운초등학교(1970), 인창중학교(1973)와 중동고등학교(1976)를 졸업했다.

모교 중에서도 올해로 개교 110주년을 맞은 중동고에 대한 애정이 유별나 보인다. 스스로 ‘사립명문 중동고’라고 내세울 정도다. 중동중·고 교장으로부터 동시에 받은 3개의 감사패가 이를 말해준다. “졸업한 지 40년 됩니다. 마지막 입학시험 세대였지요.”

언제라도 모교 후배들의 리더십 강연 요청이 있으면 단숨에 달려간다. 현재까지 진행 중인 중동고 선후배 멘토링 프로그램도 이 박사 아이디어라 했다.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내리 ‘반장’ 완장을 찼다. 그 인연은 ‘중3 반창회’와 ‘고3 반창회’를 통해 아직도 이어간다. 대단한 열정이다. 지금은 중동고 대전동문회 회장까지 맡고 있다.

현재 울산에는 S-OIL 박봉수 사장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김기식 박사가 중동고 3학년 같은 반 친구다. 20대 국회엔 새누리당의 김무성 국회의원과 박명재 사무총장, 강석호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의 윤후덕, 양승조, 김병기 의원이 고교 동문이다. ‘글로벌 한류스타’ 이병헌과 김수현은 중동의 후배동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존경하는 중동고 선배는? 삼성 이병철 회장, 그리고 총무원장과 조계종정을 지낸 월하 스님이라 했다.

-인문학도 넘나드는 ‘문화재급 지식인’

1년 전 칼럼에서 암시했듯 2016년이 그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밑줄을 최소한 세 번은 그어야 할 만큼 뜻이 깊은 해다. 한국화학연구원 창립 40주년에다 개인적으론 연구원 근속 30년, 울산센터장 부임 10년째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다.

울산테크노파크 바로 옆에 자리잡은 중구 다운동 한국화학연구원 울산분원. 울산시가 유치에 공을 들인 울산 최초의 국가출연 연구소다. 찾아간 때는 지난 25일 오전, 만난 곳은 4층 집무실이 아닌 중회의실. 자문 구하러 왔다는 울산시 공무원 두 분에 대한 조언이 계속 이어졌다. “정책 만들 땐 반드시 세계적 이슈인 ‘기후변화’ 개념을 넣어야 해요.” “저도 시와 한 몸입니다. 울산이 잘 돼야 대한민국이 잘 된다는 신념, 한 번도 버린 적 없어요.” “중국 수출이 50%인데, 그동안 너무 중국만 짝사랑해 왔어요. 이젠 다변화해야 합니다. 핵심은 아세안(ASEAN)이고요.”

‘과학기술 전략회의’에 대한 조언은 인터뷰 약속시간을 넘겨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화학 분야를 훌쩍 뛰어넘는 그의 다양하고 해박한 지식수준은 누군가의 조크처럼 가히 ‘걸어 다니는 인간문화재’급이다.

사실 그는 전공인 과학 분야에만 애착을 갖는 게 아니다. 과학자라기보다 오히려 인문학을 전공한 학자 분위기가 물씬하다. 뛰어난 문장력은 또 다른 비장의 무기로, 자타 공히 ‘오피니언 리더’로 인정한다. 특히 본보(울산제일일보)와 경상일보, 울산매일, 대전 중도일보 등 4개 신문의 정기필진을 두루 거치며 남긴 120여 편의 기고문·칼럼은 당장 책으로 엮어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만큼 내용이 옹골차고 깊이도 있다.

본보 독자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본보에 ‘이동구 칼럼’과 ‘동심동행(同心同行)’을 매월 한 번도 거르는 일 없이 싣고 있다.

-화학硏 근무만 30년 울산서도 ‘한우물’… 울산 예산 1천억, 정갑윤 의원 큰 도움

이 박사가 한국화학연구원 대전 본원(화학硏)에 몸담은 것은 1986년 지 30년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30년 내리 한 우물만 파 왔다. 그리고 ‘화학硏’이 대덕연구단지에서 문을 연 때가 1976년 9월 2일이니 올해가 창립 40주년이 된다. ‘한 우물’에 대한 이 박사의 자긍심도 40층 높이를 헤아린다. “화학硏은 세계 100대 혁신기관에 선정될 정도로 우리나라 최고의 화학 관련 국가연구소지요.”

연구소 생활 초·중반기에 이 박사는 30여 편의 논문과 40여 건의 특허, 70여 편의 학회 발표 실적을 쌓는다. 특히 2004년에는 세계 최초로 단시간에, 누구나 단 한 번에 손쉽게 할 수 있는 ‘친환경 파마약’을 개발한다. 이 기록은 그에게 ‘길이 남을 대표적 성과’로 각인된다.

연구실 관리만 책임지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2007년 초대 울산센터장으로 발령받고 불모지와 다름없는 울산으로 내려온 것이다. 개척자 정신은 이때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울산 최초의 국가연구소 ‘화학硏’을 유치한 데 이어 신화학실용화센터 예산(342억)과 바이오화학실용화센터 예산(367억)을 확보하고 2개 센터의 주춧돌을 튼튼하게 다진다. 이들 양대 센터의 건립 공로는 곧바로 울산명예시민증 수여로 이어진다. 하지만 명예시민증만으론 예우가 턱없이 부족한 것 아니냐 뒷말도 무성했다.

이 박사는 이밖에도 주력산업 융합형 정밀화학 소재 기술개발사업 연구비(120억원)와 자동차-화학 융합산업 기술개발사업 연구비(102억원)를 확보함으로써 ‘큰손’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큰 사업들 예산만 합쳐도 이제 1천억원이 넘을 걸요.” 그러면서 싱긋 웃는다. 하지만 공은 애써 다른 이에게 돌린다. “이 모두 국회 예결위원장(18대)과 부의장(19대 후반기)을 지낸 정갑윤 의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사실 그는 예산국회가 열기만 하면 여의도에서 눌러 살다시피 한다.

여하간 이 박사가 울산에서 맡은 보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노력의 변천사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울산지원센터장, 신화학실용화센터장, 그린정밀화학연구센터장, 기획경영실장,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이 그의 울산 이력서다. 특히 ‘화학산업고도화센터’는 이 박사가 10여 년 전부터 주장한 석유화학산업의 고도화를 위해 빛을 보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화학硏에만 존재한다.

-‘마당발 친화력’… 가공할 추진력의 밑거름

그의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애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워낙 다양한 업무를 섭렵하다 얻은 역량이기도 하겠지만 천성적으로 사람관계를 중히 여기는 심성 곧 ‘친화력’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그를 혹자는 ‘마당발’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결코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이러한 ‘마당발 친화력’이 가공할 추진력의 밑거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다닌다. “편한 대전 본원 자리를 마다하고 ‘이젠 함께 봉사하자’는 달콤한 꾐에 빠져 울산으로 같이 내려온 화학硏의 서봉국, 박종목, 조득희 정근우, 김영철 박사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는 말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 박사와 가까운 전·현직 시청 인사만 해도 헤아리기가 간단치 않다. 6년 전부터 녹색화학포럼으로 연을 맺은 김기현 시장과 주봉현, 장만석, 오규택 경제부시장과 하동원, 서필언, 이지헌 행정부시장은 그의 소중한 지원군들이다. 최병권, 김기수, 이기원, 허만영 경제통상실장과 신동길 창조경제본부장, 그리고 박순철, 이상찬, 김정익, 김석겸 산업진흥과장과 ‘의형제 연’을 10년째 이어가는 심민령 원자력산업안전과장은 단짝 술친구(?)들이다.

국회 인사로는 5선의 정갑윤 의원, 그린수소포럼 상임대표를 맡아 큰 도움을 주면서 국회 산자위 간사도 맡고 있는 이채익 의원, 시장 시절 센터 건립 과정부터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준 박맹우 의원, 4선의 강길부 의원도 늘 고맙게 여기는 분들이다.

이 밖에 두루두루 허물없이 지내는 분들도 손꼽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NCN 박종훈 회장과 위원들, 한국수소산업협회 이치윤 회장과 이사들, 울산과학대 허정석 총장과 교수들, 울산대와 UNIST 교수들, 그리고 문대인, 황무영, 조일래 공장장을 비롯한 전·현직 석유화학단지 공장장들, 많은 정밀화학산업 중소·중견기업 대표들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언론계 인사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울산석유화학산업 구조고도화’ 집념 불태워

어찌 보면 ‘울산 석유화학산업 구조 고도화’는 이 박사의 놀라운 집념이 낳은 상징적 미래곳간 사업이다.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이란 명함도 심심풀이로 찍어낸 게 아니다. 새로운 고지 점령을 위해 그는 마당발 친화력을 기회 있을 때마다 구사한다.

현재 매달리고 있는 석유화학산업 구조 고도화 사업의 구상은 예리한 현실 인식 바탕 위에서 나왔다. “울산이 심상찮아요. 울산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깁니다. 조선해양산업이 휘청거리는 가운데 석유화학산업이 버팀목이 된 형국이지요. 그러나 석유화학 쪽 사정도 녹록치 못하지요. 글로벌 에너지 시장 판도가 세계 3대 에너지원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탓입니다.”

여기서 ‘세계 3대 에너지원’이란 북미의 셰일가스, 중국의 석탄화학, 중동의 석유화학 자원을 가리킨다. 이 박사는 이들 3대 에너지원에 대한 투자 확대가 범용제품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원가경쟁력을 크게 위협한다고 본다. 또한 일본과 독일 등 화학강국들의 정밀화학 분야 투자 확대는 고부가가치 제품 부문에서 우리의 기술경쟁력을 압도하고 있다고 본다.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위험이 더욱 커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요.”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석유화학산업이 나아갈 길은? 이 박사는 ‘고도화, 대형화, 전문화’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세계적 글로벌 기업인 독일 바스프나 미국 듀폰처럼 우리 업체들도 기존 산업구도에서 벗어나 탈(脫)석유화와 저(低)탄소화 등을 통한 산업 고도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농화학, IT소재, 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도 투자해야 하고요.”

2009년 당시 1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기현 시장이 창립한 ‘녹색화학포럼’의 핵심 멤버였던 이 박사. 그는 RUPI(울산 석유화학산업 발전로드맵) 사업의 총괄책임자로서 ‘100대 액션 플랜’을 이끌어내서 현재까지 추진해오고 있다. 올해는 새로운 ‘Post-RUPI 사업’을 통해 자동차·조선 등 주력산업과 화학의 융합, 미래 성장동력을 이끌어갈 탄소자원화, C-산업, 신소재, 바이오화학, 나노융합, 안전산업 및 수소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9월 7일에는 울산 석유화학단지 전·현직 공장장 100여 명과 정밀화학 중소·중견기업 CEO 50여 명 등 15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화학네트워크포럼 및 상생협력 조인식’을 갖는다. 이 행사 역시 이 박사가 기획, 주관하고 있다. 항상 대한민국과 울산경제와 석유화학산업 고도화를 우선 생각한다는 이 박사. 그에게도 아쉬움이 따를 때가 있다. 그런 아쉬움을 이렇게 토로한다. “현직에 계신 공장장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협조가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늦둥이 사랑, 청소년·인성교육 열정으로

이 박사는 청소년교육과 인성교육에 대한 관심도 남다른 구석이 있다. 그런 이유를 ‘마흔 넘어 얻은 늦둥이 아들’에서 찾는다. “시대가 바뀌면서 아이들도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옛날 방식대로 아이들을 지도하다간 낭패 보기 딱 알맞지요.”

“아버지가 변해야 아이가 바뀐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소신 때문에 한때는 ‘아버지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사춘기 청소년이 갖추어야 할 6개 덕목으로 ‘꿈, 꾀, 끼, 깡, 꼴, 끈’을 손꼽는다. 이 6개 덕목에 대한 강연 초청은 요즘 멀리 서울과 전주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늦둥이 아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인 적도 있다. 중2 때 시작해서 고3 때까지 5년간 봉사활동 1천27시간을 채우게 한 것. “저도 같이 가서 홀몸 어르신 공경하는 마음을 심어주었지요. 처음엔 어색해하며 말도 안 하시던 어르신들이 자주 만나니 나중엔 눈물까지 글썽이시던데, 아들도 느낀 바가 많았을 겁니다.”

이 박사의 늦둥이 아들이 입대한 것은 지난달 6일. 지난 11일엔 동두천 포병여단 사령부에서 신병교육 수료식 때맞추어 군인이 된 아들을 처음 만나러 갔다. 이 박사는 문득 1970년대 후반, 김해 공병학교에서 교육 받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 군대는 엄청나게 좋아졌지요. 하지만 아들은 지금 고생이 많다고 느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해주곤 하지요. ‘군대란 잠시 쉬었다 가는 인생의 쉼표 같은 것’이라고.” 그동안 이 박사가 아들에게 보낸 손 편지는 수십 장은 좋이 넘을 성싶다.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아들의 9월 3일자 첫 외박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산이씨 명문가… 서청원 의원은 처고모부

이동구 박사의 집안은 이른바 ‘뼈대 있는’ 집안이다. 포은, 야은과 함께 고려삼은(高麗三隱)으로 불리는 목은 이색 선생을 시조로 둔 명문가 한산이씨 집안 출신인 것이다. 한산이씨 가문이라면 토정비결의 토정 이지함 선생, 선조시대에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 선생,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이개 선생, 독립운동가인 월남 이상재 선생도 배출했다.

음악을 전공한 이정혜(56) 여사와의 사이에 1녀 1남을 두고 있다. ‘1남’은 얼마 전 입대한 늦둥이 아들로, 큰딸과의 터울은 9년이다. 온 가족이 천주교 신자인 그는 20여 년째 미사반주를 하는 아내와 함께 대전교구 궁동성당에서 빠짐없이 새벽 주일미사를 드린다. 미사 후 7시쯤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아침식사를 나눈다. 메뉴는 선지사골 해장국, 올갱이 해장국, 꼬리곰탕, 콩나물국밥 이 네 가지로, 한 가지씩 돌아가면서 먹는다. ‘울총’(울산 총각) 10년차로 떨어져 사는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방법이라는 게 이 박사의 귀띔이다. 그리고 토요일 낮에는 꼭 영화 관람을 함께 한다.

부인을 만난 인연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박사의 부친은 고(故) 이남규 변호사(원주지원장·고법판사 역임)고, 장인은 고(故) 이용훈 변호사(초대 서울지검 공안부장·법무부차관·법제처장·국회의원 역임)다. 두 분은 현역 시절 신앙촌 사건의 주임 판사와 검사로 만나 박태선 장로를 사이비 종교인으로 규정하고 실형을 선고한 판례로 온 세상을 놀라게 했던 장본인들이다. “두 어른이 호형호제하며 지낸 인연이 지금 부부의 연으로 이어진 거라고 믿고 있지요.” 이 박사의 혼잣말이다.

가족 중에는 친형인 이창구 전 인천시 행정부시장(행시 21회, 기획예산처 부이사관·행자부 조직혁신단장·인천발전연구원장 역임)과 윗동서인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행시 22회, 예산실장·통계청장·문화부차관·경제수석비서관 역임)이 있다. 8선 국회의원인 서청원 의원은 이 박사의 처고모부다.

“울산과의 인연,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겁니다.” 울산명예시민 이동구 박사의 맺음말이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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