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의 꿈과 웅변가
거위의 꿈과 웅변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8.2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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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유독 웅변대회가 많았다. 주로 반공에 대한 웅변대회다. 그때의 한 장면을 보자. “(전략)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을 위하여! 이 연사!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외칩니다!” 그 연사는 단계적으로 처음엔 왼손을 들고 다음에 오른손을 올리고 마지막에는 양손으로 하늘을 향해 찌르듯이 우렁차게 외친다. 중간 중간에 호흡을 적절히 주입하여 리듬을 잘 타면 멋진 웅변이 된다.

‘웅변’이란 조리가 있고 막힘이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것 또는 그런 말이나 연설이라 사전에서 풀이한다. 고대 로마의 최고 웅변가였던 키케로(M. Cicero)는 “웅변술의 세 가지 요건은 교훈을 주고 기쁨을 주며 행동하게 하는 것”이라 했다.

지난 3차 새누리당 당대표후보 충청권 연설회가 열리는 날이다. “저 이정현은 오늘 여기에 오기 전에 아산 현충사에 참배하고 왔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 돌아가거든 새누리당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전해라!”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최종 투표 당일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는 “당원 여러분! 만약에 제가 보수정당 새누리당에서 호남출신 당대표가 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일 아침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날 것입니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처음 있는 대변혁이라는 것을…”

그의 스피치를 들어보면 매회 감동의 연속이었고 코끝이 찡한 연설이었다. 그것은 지나간 국회의원 선거유세에서 얼마나 많은 서러움과 수모를 겪었으면 이런 한 맺힌 목소리가 나왔을까 하는 기분이다. 또한 ‘점퍼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연설 도중 점퍼를 내팽개치는 모습은 너무나 격정적이고 호소력 있는 연설방법이었다. 여태 한국 정치가 중 이렇게 설득력 있고 호소력 있는 연설을 한 사람이 있었던가.

그는 10살 때부터 정치인의 꿈을 키워온 천부적으로 큰 목청과 굵은 액션을 가진 웅변가다. 관중을 사로잡는 파워풀한 그의 연설 모습은 여타 후보와 비교할 수 없다.

눈 코 입 얼굴이 모두 둥근 그는 회색 잠바에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유세했다. 어느 때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주민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면서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이장집을 찾아가 밥을 얻어먹고 마을회관에서 잠을 잤다. 너무나 서민적이다. 자고로 이런 진정한 정치가를 본 적이 있는가.

잘 부탁한다고 지역주민과 악수를 한 후 뒤돌아섰을 때 그의 귀에 들리는 험한 말이다. “새누리당 후보가 어디! 여기에서 감히 되려 한디? 눈깔을 파버릴랑께!” 그뿐인가. 선거주민에게 명함을 건네주자 그 자리에서 찢어서 얼굴에 확 뿌렸을 정도였으니 정말 서러움과 수모 그 자체였다.

그는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을 너무 좋아하여 휴대폰 컬러링으로도 사용한다. 아마 그러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중략)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마치 그의 라이프 스토리를 읽는 것 같다. 진짜 ‘그날’이 온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더 큰 날이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사무처 말단부터 시작해 당대표까지 밟아온 그의 인생역정만 보아도 많은 서민들은 반가워할 것이다. 흙수저조차도 아닌 무(無)수저가 신화를 이루었으니 말이다.

이정현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된 직후 한 수락연설에서 “지역적으로 비주류·비엘리트 출신인 제가 당대표가 됐기에 앞으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으로 새누리당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을 위한 좋은 혁신정치를 이번에는 정말 기대한다. 그가 줄곧 강변한 ‘섬기는 리더십’으로 한번 정의롭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고대한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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