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단상
올림픽 단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8.1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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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했다.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참가한 올림픽이었지만 동메달 2개를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동메달은 역도와 권투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민들의 실망은 컸다. 선수단이 귀국하자 책임론도 불거졌다. 결국 대한체육회 간부가 총사퇴해야 했다.

국민들의 실망은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다. 런던올림픽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다시 열린 대회였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과 남승룡이 올린 쾌거를 기억하는 국민들은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대표팀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이었다.

런던으로 향하는 선수단을 온 국민이 환송하며 건승을 기대했다. 선수단은 서울역에서 철도로 부산까지 갔고 선편으로 일본 요코하마, 중국 상하이, 홍콩을 거쳐 비행기로 런던까지 갔다. 환송열기는 행로마다 이어졌다. 일본을 지날 때 재일동포들의 환송은 지극했다. 일본은 독일과 함께 패전국이어서 올림픽에 참가할 자격을 갖지 못 한 가운데 대한민국 선수단이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앞세우고 장도에 오르는 장면을 동포들은 감격스럽게 바라보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회가 시작되면서 승전보도 날아들었다. ‘我軍(아군) 蹴球(축구)에 墨軍擊破(묵군격파)’라는 제목으로 축구 대표팀이 멕시코를 5대3으로 이겼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당시 신문에서는 멕시코를 묵서가(墨西哥)로 표현했다. 그러나 축구 대표팀은 다음의 스웨덴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12대0으로 대패한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마라톤에서 실망감은 극도로 치달았다. 홍종오가 25위, 서윤복이 27위를 했고 35km지점까지 선두를 달리던 최윤칠은 기권했다. 당시 신문기사에는 ‘지도자가 불민(不敏)했다’는 내용도 보인다.

하지만 동메달 2개를 따낸 성적은 신생국으로서 결코 저조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 수준을 잘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기대만 키웠기 때문에 실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한국은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확보했다. 올림픽 성적도 상위권이다. 일본보다도 앞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보다 앞선다고 해서 마냥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체육정책을 ‘엘리트 체육’과 ‘사회인 체육’으로 구분할 때 일본은 ‘사회인 체육’ 쪽에 치중하고 있는 분위기다.

학원 스포츠도 일본에서는 어디까지나 교육의 일환으로 관리되고 있다.

지금 일본열도에서는 고교야구 열기가 뜨겁다. 제98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고시엔(甲子園)구장에서 열려 ‘고시엔대회’라고 불린다. 일본국민들이 이 대회에 보이는 관심은 유별나다. 주최사인 아사히신문은 매일 경기결과를 호외를 발행하며 보도하고 있다. 인터넷시대에 호외가 지니는 본래의 의미는 없다. 다만 뉴스의 밸류를 그렇게 중하게 다룬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 대회의 지역예선에 참가하는 팀은 4천개교가 넘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전국적으로 예선대회를 치르고 그 대회의 우승팀들이 고시엔대회에 참가한다. 지역예선부터 본선결승전까지 철저하게 방학기간에 치른다. 학기중에는 대회를 치르지 않는 것이 일본에서는 상식이다.

일본에서 학원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교육의 일환이다. 그런 가운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학생들이 직업선수의 길로 들어서는 시스템이다. 우리의 학원 스포츠와는 결이 다르다.

올림픽에서의 승전보를 접하면서도 국내 스포츠 정책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강귀일 취재2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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