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도 3인칭인가요?
개똥도 3인칭인가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0.02 2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으로부터 강의를 들을 때, ‘아하’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 하’의 감탄사는 어떤 사물이 이해되지 않아서 끙끙대고 있을 때, 낱낱으로 떨어져 있던 것을 한 눈으로 볼 수 있게 연결시켜 주었을 때, 탁 튕겨주는 선생님의 설명, 해석이 있을 때 나오는 소리이다. 유명한 이야기가 양주동 선생의 영어공부에 나온다. 영문법의 ‘제3인칭 단수 현재’라는 말에서 3인칭이라는 말의 뜻이 이해되지 않아서, 끙끙 대다가 20 리의 먼 길을 걸어 선교사(?)를 찾아가 그 뜻을 물어보았더니 ‘너와 나’를 빼놓고 모두 3인칭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제일 먼저이니까 1인칭이고, 내가 있은 다음에 네가 있으니 너는 두 번째의 2인칭이고 나머지는 모두 다 세 번째의 3인칭이다는 설명에 ‘아, 하’가 나오며 ‘나와 당신(너)을 빼놓고 책상, 벽, 바닥, 마당의 신발, 저 개똥도 3인칭인가요?’ 라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은 물론이다.

여기에서 너와 나를 빼놓고 모두 ‘제 3자’라는, ‘거래 밖’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특히 부부 싸움에, 애비가 자식을 혼낼 때도 나머지는 모두 제 3자이다. 그래서 함부로 중간에 끼어들지 않는다. 옛날에는 법도(法道)라는 것이 있어서 경우에 따라 끼어들기도 했다.

법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기준이었다. 법도는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자’고 정한 것이다. 3인칭이라는 말이, 제 3자의 개념이 우리나라 문화에 소개되기 전에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이었다. 제 3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못된 행동을 하는 젊은이가 있거나 더불어 살면서 품앗이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을 ‘우리’라는 규범의 틀로 묶어서 ‘멍석말이’를 하였다. 멍석말이는 동네의 어른이 넓은 마당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죄목을 불러주고 혼찌검을 내주어 버릇을 고치겠다는 일장 훈시가 있은 다음에 잘 못한 사람을 멍석에 뉘이고 둘둘 말아서 적당한 몽둥이로 여러 사람들이 멍석을 때리는 것이다. 멍석으로 말아버리는 것은 누가 때렸는지 모르게 하기 위한 것과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 때리게 하는 것이다. 이 멍석을 맞고 그 안의 사람이 맞으니 크게 다칠 것은 없으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동네 어린애들까지 멍석말이를 당한 사람이라고 흘깃거리니까 대개는 그 동네에 못 살고 멀리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된다.

가을이 되면 우리나라에는 ‘가을 병’이라는 것이 있다. 계절 탓이다. 가을 병은 갑자기 옛 것이 그립고, 낙엽 떨어지는 것이 슬프고, 인생살이가 무상하다며 심각하게 생각하고, 아등바등하는 이웃이 허무하고, 그들이 불쌍하게까지 느껴지고, 그만 눈물이 흘러내리는 병이다. 이런 계절병을 자극하는 일이 최근 울산에 생겼다. 바로 울주군 군수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는 사람들한테서 느끼는 허무감이다. ‘저 사람이 저렇게 하려고 그동안 선심을 썼었나?’ ‘언제부터 지도자적 자질을 키웠나?’ ‘무엇보다도 구역질나는 위선자였잖아?’ ‘무엇에 떨어지고 군수로 내려 앉아?’ ‘부려먹으려고만 하지 말고 부려 먹히어 보지 그래!’

개똥같은 제 3자가 나서서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저 투표에 참여하여 멍석말이 대신 도장으로 결정을 하면 된다.

/ 박문태 논설실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