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실려 오는 행복
파도에 실려 오는 행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7.2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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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잠자리에 들어 파도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휴가철 여름해변의 인파가 하나 둘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바다도 칠흑의 휴식에 들 즈음 한낮의 소음에 묻혔던 파도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잠결인 듯 꿈결인 듯 그 소리에 심취해 있다 보면 하얀 포말의 파도가 침대머리맡까지 달려올 것만 같다.

쏴아아~ ~ ~ 몰려왔다 부서지며 사라져가는 저 원시성(原始聲).

인적이 드문 새벽녘엔 내가 존재하는 지금 이 세상의 모든 주변 언저리가 모두 바다인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바다에 대한 나의 동경은 뜬금없이 오래고 깊었다. 언제부턴가 분명하진 않지만 미당의 <해일>이란 시 한편을 읽다 우연히 꽂혀버렸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마당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거의 현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 반분의 꿈은 이루어진 셈인가. 10년 만의 이사로 바닷가 마을에 짐을 풀었다. 아직은 적응이 되지 않아 어느 낯선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이지만 톡톡한 뒷산의 숲이며 집 옆 하천을 흐르는 맑은 물과 전면의 바다 조망이 그야말로 내 심신을 온전히 빼앗겨도 좋을 만하다.

때로 복잡한 일상과 맞물려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 때 언제부턴가 바다를 찾는 습성이 생겼었다. 비상구처럼 찾아들던 바닷가, 그 구원의 심연 가까이 터를 잡았다.

사람들은 바다의 모습이 어제나 오늘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바다는 언제나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오늘 아침 여름바다는 경계를 지웠다. 마치 모두 하늘인 듯 모두 바다인 듯 그 속에 감춰진 그의 모습을 알기엔 역부족이었다. 새벽 숲에 햇살이 들어 숲의 속살이 드러나듯 구름 속 아침햇살에 지그시 눈을 뜨는 바다는 마치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동화 속 숲속 요정 같기도 하다.

기지개를 켜는 바다의 곁길을 걸어 보았다. 아침부터 저녁어스름까지 해변을 따라 다리가 아플 때까지 지치도록 걸어보리라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바다가 좋을 뿐이다. 하루 내내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좋고 아침이면 보게 되는 일출이 벅차고 밤이면 산천에서 울어대는 개구리소리조차 사랑스러울 뿐이다.

언제나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따른 적이 많았지만 넓은 바다를 보면서 타인과 자신에 대한 아량도 배워보기로 했다.

파도소리를 들으면 왠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손바닥을 펴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마술처럼 매사에 억지를 쓰지 않게 된다는 뜻일 게다.

해변을 기어오르다 다시 부서지는 파도에서 좌절 아닌 순응을 배운다. 밤새 부서진 파도가 간절한 기도처럼 또 얼마나 몽돌을 밀어 올렸을까. 새벽 산책길 물에 씻긴 말간 몽돌이 아침햇살에 반짝였다.

도심을 벗어난 이 여유로움과 한가함이 정말 내가 가진 행복이 맞나 싶어진다.

밤이 깊어 간혹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소리에 바다도 숨을 멈추듯 파도소리가 묻힌다. 그러다 다시 쏴아아~ ~ ~ 어떤 의성어로도 말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저 해조음을 나는 밤마다 경청한다. 파도소리는 바다 영혼의 소리다. 그 어떤 물리적 현실적 타협도 없이 자정하며 우리를 정화시키는 태고의 원시성.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인 듯 내일은 또 어떤 얼굴을 할까. 낮보다 유혹적인 오늘 밤 파도소리에 나는 또 다시 빠져들 것이다.

이정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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