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앵, 긍정적 시각
전화앵, 긍정적 시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7.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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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딸을 더럽혀 기생(妓生)이 되게 말라 음풍(淫風)이 전국에 퍼져 죄악(罪惡)이 가득할까 하노라”(레 19:29),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삿 11:1),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삿 16:1), “라합이라 하는 기생”(수 2:1) 등 기생에 대한 내용이 <성경>에도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서양에서도 기생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통도사 영축산문을 막 들어서면 무풍교가 있다. 무풍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에는 이끼 낀 큰 바위가 있다. 바위 오른쪽에는 기(妓) 만년춘(萬年春)·채란(采蘭)·학부금(鶴府錦)·난희(蘭喜) 등 기생의 이름이 새겨진 큼직한 석각글씨를 찾을 수 있다. 이끼로 인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또한 무풍교(舞風橋)에서 시작되는 노송로(老松路)는 선자(扇子)바위에 다다라 비로소 끝나는데 그 사이 크고 작은 바위에는 계월·회산계선·진남춘흥·경주봉란·향란·금릉벽도·앵혜·금홍·정국향·월계 등 기생의 다양한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기생도 나름으로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들과 교류가 있었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의미로 ‘해어화(解語花)’라 지칭한 이유이다.

‘어젯밤에 꿈 좋더니 님에게로 편지 왔소 그 편지 받아들고 가슴위에 얹었더니 인찰지(印札紙=무게가 없는 얇은 종이에 쓴 편지) 한 장이 무겁겠소마는 가슴이 답답하여 못 살갔소’(산염불). “만약 꿈에 내 혼이 다녀간 흔적이 있다면 님의 문 앞 석로는 반쯤 모레가 되었을 테지요/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砂”(수심가).

생몰년대가 미상인 조선 중기의 여인 이옥봉(李玉峰, ?~?) 의 시 ‘몽혼(夢魂)’이 수심가에 등장한다. 모두 애틋한 사모의 정이 흐르는 여인의 사연이 담긴 내용이다.

여성의 문화 가운데 기생문화가 있다. 문화는 시의적으로 생성·공급되지만 수용자가 없으면 자연 소멸된다. 기생의 문화 또한 그렇다. 기생을 천시하는 분위기가 현재도 남아 있는 것은 기생의 문화 중에 창녀(娼女)를 떠올리는 경향이 앞서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부정적인 면은 존재하지만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난다면 또 다른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노봉(老峰)과 번암(樊巖)의 관점이 대표적이며 구체적인 실제의 사례가 된다. 한림학사 출신 김극기는 신라 예기 전화앵의 묘를 찾아 ‘조전화앵’이라는 조시를 남겼으며, 영의정 출신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탐라 기생 만덕(1739∼1812)의 선행을 기록한 ‘만덕전’을 썼다. 문신 출신 허균(許筠.1569∼1618)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라는 시를 썼다.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이하 생략). 국문학자 출신 가람 이병기(李秉岐.1891∼1968)는 매창을 소재로 한 시 ‘매창 뜸’을 지었다.

“돌비는 낡아지고 금잔디 새로워라 덧없이 비와 바람 오고가고 하지마는 한 줌의 향기로운 이 흙 헐리지 않는다”(이하 생략). 부안의 관기(官妓) 출신 명기 매창은 ‘매창공원’으로, 대중가요 ‘매화 같은 여자’(최영주) 등으로 현재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결과적으로 문화예술의 고장 전북 부안군의 알림에 과거 기생인 매창도 현재 한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전통예술을 계승·발전시킨 공적에서 한 시대 기생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독창성은 일반성과 보편성을 바탕으로 심화시킨 결과이기 때문에 지역문화는 다양성과 풍부성이 함께하면 좋다. 대중가수 최영주는 ‘시와 함께 노래와 함께 살다간 매화 같은 여자여/ 시와 함께 거문고와 함께 살다간 매화 같은 여자여’라고 <매화 같은 여자>를 불러 개인뿐 아니라 부안군과 매창도 알리고 있다.

울산에는 조선시대 매창보다 오래된 신라 기녀(妓女)로 부르는 전화앵의 흔적이 전승되고 있다. 울주문화원이 행사를 주최·주관하는 ‘전화앵제’이다. 올해로 15번째(7월 29일 오후 3시)를 맞이한다.

전화앵제는 2002년 ‘울산학춤보존회’에서 제1회로 시작된 신라 예기 전화앵의 예술혼을 기리는 문화제이다. 전화앵제는 보존회에서 9년간 행사를 치르는 동안 규모와 의미가 확대·발전된 이후 10회째부터 울주문화원에서 주최·주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어떤 문화라도 추구하는 방향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폄하할 이유는 없다. 시대적 문화의 다양성 차원에서 가치를 인식하고 지역 문화를 독자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울산도 이제 한낱 혹은 일개 기생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전화앵제를 확대·발전시킬 것을 제언한다. 노봉, 번암, 가람이 관심을 가졌던 기생문화다. ‘울산 전화앵무용경연대회’(무용), ‘울산 전화앵 국악경연대회(국악)’ 등으로 지역문화의 독특성으로 활용하자.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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