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바위 유감(有感)
선바위 유감(有感)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0.0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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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연휴 때 울산에 온 친인척을 대동해 간절곶에 갔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주변 환경, 포장도로, 청결함에 그들은 이구동성 감탄해 마지않았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 울산자랑을 늘어놨다. 울산은 지역 내 1인당 총생산액이 4만 달러로 전국 1위라느니, 현대중공업은 IMF때도 호황을 누렸다는 얘기며 그 근로자들은 지난여름 휴가철에 수백만 원씩의 급여를 받아갔다는 등의 너스레를 떨어댔다. 물론 간절곶이 울산12경(景) 중 하나란 설명도 잊지 않았다.

며칠 전 언론계 후배 한명이 멀리서 온 친척과 함께 선바위에 갔던 얘기를 듣고서도 내심 ‘설마’했다. 그 후배 얘긴 즉, 인터넷에서 울산 선바위를 본 적이 있는 친척이 ‘한번 가보자’고 조르는 바람에 함께 갔다가 망신만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立岩)리에 있는 바위이다. 백룡이 살았다는 태화강 상류 백룡담 푸른 물속에 있는 기암괴석이다. 높이는…(중략). 울주군 범서읍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예로부터 빼어난 경치에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선바위 소개 내용이다.

이런 절경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후배를 보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 전 확인하는 버릇이 있어서 직접 입암(立岩)에 가봤다. 가끔 이곳을 스쳐 지난 적은 있지만 ‘관광지 선바위’를 확인 차 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곳은 울산 12경(景) 중 하나가 아니다. 매운탕 끓여 소주 마시는 취객들에겐 울주군의 대표적 관광지로 보일이지 모르지만 정상인에겐 실망스럽고 수치스런 곳 일 뿐이다. 우선 명소(名所)의 기본사항인 안내 표지판이 전혀 없다. 선바위로 다가가는 접근로(路)는 범서 쪽 주변 식당들이 막아 버려 출입구를 찾을 수 없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매운탕 집 옆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스테인리스 철판위에 몇 자 적어놓은 조그만 표지판이 이곳이 선바위임을 알리는 전부다. 주변에 수영금지 표지판이 많이 있어 오히려 야외 수영장으로 착각할 정도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이 울산 절경(絶景)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정황은 없다. 사진술이 만들어 낸 ‘착각의 현장’ 일 뿐이다. 지금 선바위 일대는 관광지는 고사하고 유원지도 아니며 난장판이나 다름없다. 하천변에 너지러 진 쓰레기,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동물의 오물, 취객들의 고함소리 외엔 보이고 들리는 것이 없다.

한마디로 말해, 절경이란 그럴싸한 이름만 붙여 놓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행정 사각지대이다. 멋모르고 친척을 이곳으로 안내한 후배의 황당했음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울산 12경 중 하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 더 큰 후회를 남길 줄은 그때까지도 몰랐다.

‘이럴 리가 없다. 어딘가에 멋진 안내표지판과 선바위로 통하는 깔끔한 포장도로가 있을거다.’

범서 쪽에서 입암교를 건너 선바위 뒤편으로 연결되는 좁은 시멘트 길에 들어서서야 이 기대감마저도 허사임을 알게 됐다. 요즘 들어선 구영리 아파트 단지, 입암교의 위엄에 눌려 입암(立岩)은 그야말로 맥도 못 추는 형국이었다.

선바위는 지금 울산 12경 중 하나가 아니다. 인간의 가식이 만들어 낸 선전물에 불과하다. 태화강 하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 축제와 전혀 무관한 ‘커다란 돌덩이’ 일 뿐이다.

이제부터 이곳을 울산 12경 중 하나라고 생각지도 말고 소개하지도 말자. 추한 인간들이 최소한의 인간양심을 지키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 정종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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