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아, 철아, 우리 철아” 54
“철아, 철아, 우리 철아” 5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30 2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강병원 설립 후 하루가 짧게만 느껴져
지나간 시절 회상하며 하루하루 소중히 여겨

‘이제 나는 늙었다. 젊은 날을 뒤돌아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경복(景福)시절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살아남은 6·25 전쟁까지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대학을 졸업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소금장사로 밥벌이를 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생소한 소금 장사를 시작하며 소금마다 다른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소금 알갱이 하나하나를 만져보고 입 안에 넣어 맛을 비교하던 날들과 추위와 공포 속에서 야행동물이 되어 캄캄한 밤길을 걷고 또 걷던 시절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나는 늙었고,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온 청년과 장년 시절의 나를 석양이 붉게 물든 언덕에서 회상하며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 할 뿐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좀 더 멋진 삶을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부질없는 욕심 아니겠는가.

돌이켜보면 인생은 긴 것도 같고 짧은 것 같기도 하다. 젊은 시절, 삶에 지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울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소망했었고, 동강병원을 설립한 후, 순항하고 있던 시절에는 하루가 짧게만 느껴졌었다.

울산 최초의 종합병원을 짓기 위해서 인부들과 뒤섞여 산허리에 있던 소나무를 베어내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던 시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 모든 순간이 지나가고 지금은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내일을 기다린다. 화려함을 모르고 살아온 내 삶은 질그릇처럼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흙빛에 담긴 그윽한 깊이를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를 것이다.

모든 것이 재빠르게 스쳐가는 시대에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질그릇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를 소원하는 것 또한 내 욕심일 듯하다. 꿈 많던 경복시절, 조용필의 노래 가사처럼, 킬리만자로 정상의 표범이 굶주림으로 얼어 죽을망정 남의 고기를 탐하는 하이에나를 경멸하던 내가 이제 누군가 먹다버린 썩은 고기의 살점까지 뜯어먹는 하이에나로 변한 현실을 누구의 탓이라 하겠는가. (편집자 주: 경복시절 전국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하던 문학청년의 정서(情緖)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증거이다.)

많은 아쉬움이 나를 괴롭힌다. 특히 어릴 때, 앓은 신경쇠약으로 얻은 언어장애는 일생을 두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두운 땅 속에서 햇빛을 피해 살아가는 지렁이처럼 살아온 것 같다.

찬란한 햇빛을 못보고 진흙 속에서 살아온 지렁이가 그 말년에 독사로 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돌연변이가 시간을 초월한 진화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독기를 품은 채 꿈틀거리고 있다.

어렸을 때,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을 따고 싶어 열병을 앓던 소년이 세월의 파도에 쓸려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끝내 보잘것없는 돌멩이로 변한 쓸쓸한 이야기로 이 글은 끝날 것이다.’

<동강 선생의 미간행 자서전에서>

쓸쓸한 이야기가 아니다. 동녘의 해처럼 솟아오르는 힘찬 도약의 외침이 동강 선생의 꿈을 더 크게 실현시키기 위해 퍼져나갈 것이다.

동강 선생의 업적과 인간미를 종합하여 다음 금요일(10월 3일)에 제시한다.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