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마을에도 없는 제비
보은 마을에도 없는 제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6.2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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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몰러 나간다.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복희씨(伏羲氏) 맺힌 그물을 두루쳐 메고서 나간다/ 망탕산(芒宕山)으로 나간다/ 우이여∼ 어허어 어이고 저 제비 네 어디로 달아나노/ 저 제비 네 어디로 달아나노” (경기 12잡가 중 ‘제비가’ 일부)

제비는 여름 한철 사람과 공존하는 철새다. 천적의 공격을 피해 민가에 둥지를 만드는 것으로 진화했다. 함께 살기 때문인지 우리 민속 생활 곳곳에 제비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제비는 흥부전 덕분에 보은의 상징적 새가 됐다. 제비는 현조(玄鳥), 연자(燕子) 등 다른 이름도 있다. 제비는 같은 장소를 찾아오는 귀소본능이 강하다. 동물이 서식지 혹은 둥우리를 계속 찾는 것은 본능이겠지만 반복해서 둥지를 만드는 것은 포식자로부터 안전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편 제비는 ‘빠르고 정확하다’는 점에서 우체국의 상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비는 매년 개체수가 서서히 줄어들어 과거 속의 잊힌 새가 되어가고 있다. 제비의 개체수 감소는 처마가 있는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나 빌라 등 처마가 없는 주택의 증가를 간접영향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제비의 개체수 증가 사업의 방안으로 유사 자연환경 조성 등 먹이와 서식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법 중 착안한 것이 초가집 복원 등 인공 둥우리 만들어 주기이다.

이러한 활동은 노력에 비해 효과가 적을 뿐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근본적인 대책은 농약 살포 자제이다. 농약 살포량이 감소하지 않는 한 제비 개체수 증가의 효과는 적다. 두 세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제비 개체수 감소의 직접적인 영향은 과다한 농약 살포로 인한 먹잇감의 급속한 감소에 있다고 단언한다.

비단 제비뿐만이 아니라 곤충을 먹이로 하는 다양한 조류도 마찬가지다. 또 이러한 조류의 개체수 증감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가을이 되면 남쪽으로 이동하는 태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월동지에서도 개발이 진행되면서 서식지 감소로 이중고를 겪는 것으로 보인다. 농약의 영향이 없으면 자연의 온갖 생물이 되살아나는 것은 불을 보는 것처럼 분명하고 뻔한 일이다.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제비의 개체수가 증가한다는 주장에 머리를 끄덕일 수 없다. 오히려 농약 살포량이 감소되니 제비의 개체수가 증가했다는 표현이 객관적이며 과학적 접근이다. 제비가 많아졌다는 것은 먹이인 곤충의 개체수가 증가했다는 것이고, 곤충이 많아졌다는 것은 농약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는 뜻이다. 제비는 깨끗한 환경을 나타내는 환경지표동물이 아니라 건강한 환경을 가름할 수 있는 철새이다.

제비의 먹이활동은 해가 뜨고 나서야 시작된다. 주된 먹이인 곤충류가 해가 솟아야 활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비가 날아다닌다는 것은 먹이와 연관된 삶의 방식인 것을 알 수 있다. 확대하면 흐린 날 제비가 낮게 날아다니는 것도 역시 먹이인 곤충류가 낮게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제비는 고인 물에서 목욕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 날면서 물을 치고 목욕을 한다. 이를 본 사람들이 ‘물 찬 제비’라 표현했다. 수면위로 던진 돌이 물을 몇 번을 치고 나가는 것을 ‘물수제비뜬다’고 한다. 물론 제비의 행동태를 모방한 놀이이다.

“짐승을 도와주면 보은(報恩)을 하고, 사람을 도와주면 악물(惡物)을 한다”는 말을 연상하면서 울주군 삼동면 보은리를 찾았다. 보은천(報恩川)은 울주군 삼동면 하잠리를 거쳐 태화강과 중·상류에서 합수되는 태화강의 지류이다. 보은천은 물이 맑고 자갈이 많아 야행성으로 수서곤충 애벌레를 먹이로 하는 앙증스러운 ‘꼬치동자개’가 사는 곳이다. 보은교(報恩橋)는 보은천에 놓인 다리 중 하나이다.

제비집을 찾으러 다니는 필자는 잔뜩 기대를 걸고 보은 마을을 찾아가는 중이다. 마을 입구에서 상추 다듬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했다.

“할머니, 이 마을이 보은마을이죠” “야 그런데요” “이 마을에 제비가 집을 지은 집이 있습니까?” “남의 집이라 일일이 알 수 없고…. 요새 제비가 집을 짓능교? 이 동네는 없습니다! 요즘 농촌에 제비가 어디 있나요?”

대답은 간단명료했고, 오히려 반문을 해 왔다.

흥부전으로 선입견이 된 보은의 박씨를 물고 온 제비 설화가 역시 상상으로 그쳤다. 마을 회관을 찾았다. 마을의 유래는 일반적인 보은의 이야기와 달랐다. 마을 이름을 보은(寶隱)으로 적고 있어 기대가 무너졌다. 이윽고 ‘외바퀴 손수레’에 퇴비를 반쯤 싣고 지나가는 중년 아저씨를 발견했다. “지역이 보은이라 하는데 마을 이름의 한자 표기는 왜 다릅니까?”라는 물음에 관심 없다는 듯 “내는 잘 모릅니더. 저기 마을 유래를 읽어보이소”라는 말을 남긴 채 총총걸음으로 사라진다. 몇 발짝 따라가다가 그냥 멈춰서 버렸다. 제비가 없는 농촌 들녘이다. 농부, 개구리, 물뱀, 미꾸라지, 메뚜기, 뜸부기, 논고동, 고라니, 백로, 참새가 함께 짓지 않는 벼농사인데도 ‘환경친화적 유기농’ 운운하는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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