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애상(哀想)
유월의 애상(哀想)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6.2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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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회 현충일인 지난 6월 6일, 아침식사를 끝내고 우리 부부는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을 참배할 요량으로 대문에 조기를 내걸고 바로 출발했다. 새로운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한산해서 좋다. 내가 44년 전 ‘철의 삼각지’ GOP 소대장 시절, 포탄을 맞고 월정리역에서 널브러져 있던 철마, 총탄에 뚫린 녹슨 철모와 임자 잃은 헌 군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어느새 유엔기념공원 정문에 도착했다. 말쑥한 군복차림에 짙은 선글라스를 낀 위병이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14만8천㎡(4만5천평)의 잘 정돈된 묘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깔끔하게 손질된 잔디밭은 초록색 융단을 깐 것 같고, 형형색색의 장미꽃이 유월의 햇볕 아래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잠시 후 위령행사가 시작되었다. 은은한 진혼곡이 용사들의 영혼을 달래듯이 묘지 위로 메아리치고, 유엔기를 중심으로 참전국의 국기가 푸른 창공에 펄럭인다.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국은 21개국이다. 전투병을 보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6개국과 의료지원병을 파견한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등 5개국이다. 이 용사들 중 4만명이 이름도 생소한 나라,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낯선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다 산화(散華)했다. 이곳 유엔기념공원에 2천300명의 고귀한 용사들이 잠들어 있으니, 목숨 바쳐 지킨 이 나라가 통일이 되기를 지하에서 기원하고 있는가!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것이 우리 민족만이 느끼는 아픔일까? 동서고금을 통해 자식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주위의 묘지석을 찬찬히 살폈다. 영국 병사 베네트(R.A.F.Benneft)와 캐나다의 커슨(F.W.A. Cusson) 용사는 19세 꽃봉오리 같은 나이에 목숨을 바쳤다. 터키 병사 리더반 트러치(Riduan Terzi)는 1951년 5월 18일 24세로 산화했다. 뉴질랜드의 맥도날드(Macdonald)와 이역만리 남아공에서 온 버스터(J.P.Verster) 용사도 1951년 23세로 우리 산하에 쓰러졌다.

전쟁 미치광이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을 찾아가 동족의 심장을 쏘기 위해 탱크, 자주포, 무량(無量)의 병력을 지원받아 6월 25일 새벽에 기습 남침을 해왔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유엔군 병사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 그 이름도 생소한 대한민국에서 용감히 싸우다 이곳에 잠들어 있으니, 세계에서 단 한 곳뿐인 평화의 성지(聖地), 유엔기념공원이 바로 이곳이다.

가끔 학생들을 인솔해 온 교사가 6·25가 남한에 의한 북침이라고 설명한다는 안내원의 말을 들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곳에 잠든 용사들이 불법 북침에 고귀한 생명을 바쳤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진다.

피골이 상접한 인민들을 외면한 채 자신의 권력에만 집착하는 북한의 권력자가 한심하다. 시대착오적인 권력 3대 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공포통치를 자행하고 있으니, 저 불쌍한 북한 인민들은 어쩌랴! 허기진 인민들을 언제까지 억압할 수 있을지, 총구로 위협하는 공포통치가 언제까지 가능할지…… “일부의 사람을 언제까지는 속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언제까지나 속일 수는 없다”고 링컨이 말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6·25의 녹슨 포신에서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고, 탱크의 굉음이 들리는 것 같다. 북한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철없는 통치자가 또 어떤 흉계를 꾸밀지 섬뜩하다. 이 땅에 또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찾지 못한 13만 유해(遺骸) 위에 또 피를 흘릴 수 없다. 요즘 젊은이 중 57%가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를 모른다니 이곳에 잠들어 있는 용사들의 고마움을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다. 위정자들은 반드시 이곳에 잠든 영령들께 참배하고 참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을 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용서는 해도 잊지는 말자”고 했지만, 아직도 차가운 어느 골짜기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구천(九泉)을 떠도는 13만의 고혼(孤魂)이 있는 한, 이곳에 잠든 고귀한 용사들이 있는 한,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다. 워싱턴의 한국전쟁 기념공원 비문에“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고 써 놓은 경구를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겨야 되지 않을까?

정의의 용사들이여! 자유의 천사들이여! 여러분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김태규 울산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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