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신의 한 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6.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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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이 맞붙은 세기의 뚝심대결에서도 나왔던 말이다. 이세돌이 딱 한번 이긴 ‘제4국 78수’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쓰임새가 이처럼 다양한 말도 드물지 싶다. 바로 ‘신(神)의 한 수(手)’다. 일본어로 ‘神の一枚’, 영어로는 ‘A skill of God’이다. 굳이 풀이한다면 ‘절묘한 선택’이 어떻겠는가?

누가 언제 처음 사용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 용도는 실로 무궁무진해 보인다. 영화 이름, TV 드라마 이름, 심지어는 게임 이름에도 나타난다. 요 며칠 사이 사용빈도만 해도 그런 지론을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가장 최근엔 이시종 충북지사가 사용했다.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민주 시·도지사 정책협의회에서의 일이다. 그는 “비수도권으로 갈 교부세 2천500억원이 경기도로 떨어지는 지금의 지방재정 제도는 경기도 입장에서 ‘신의 한 수’”라고 꼬집었다. 울산의 저명인사도 같은 의미의 용어를 구사했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인 박맹우 국회의원(남구을). 그는 24일 국토교통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영남권 신공항’ 문제에 대해 속기록에 남을 말씀을 남겼다. “정부가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치켜세운 것. 보좌진은 곧바로 재치를 발휘했다. 보도자료의 부제(副題)로 ‘신의 한 수’를 택했던 것.

‘신의 한 수’는 최근 TV의 생방송, 재방송에서도 그 존재감을 과시한다. 26일 아침 대한민국-포르투갈 배구대회 2세트. 우리 팀이 23 대 24로 뒤진 시점, 우리 선수가 극적으로 한 골을 넣어 24 대 24 동점을 이뤘다. 그 순간 생방송 해설자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 “신의 한 수!”란 말.

또 25일 밤 매일방송(MBN) 교양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197회(‘산에 안긴 자유 영혼’) 재방송 편에선 산속 생활 16년째라는 이인홍(69)씨의 된장찌개 솜씨에 놀란 개그맨 이승윤씨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참기름이 신의 한 수”라고. 어디 그뿐인가. 지난 24일 밤 대전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한화전 연장 10회초, 2사 1, 3루 때 대타로 나온 롯데 선수가 번트안타로 점수를 올렸다. KBS 해설자의 즉흥 멘트가 뒤따랐다. “이여상이 신의 한 수, 환상적인 번트안타로 허를 찌르며 친정집에 비수를 꽂았네요.”

그러고 보면 ‘신의 한 수’는 ‘약방의 감초’다. 하지만 용도에 한계는 있다. 나쁜 상황이 아닌, 좋은 상황일 때 주로 쓰이는 것. 어찌 됐건 ‘신의 한 수’가 필요한 곳은 요즘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의장단 선출을 코앞에 둔 지방의회들이 특히 그렇다. 그 중에서도 유독 심한 데가 있다. ‘4선 의장’ 시비로 바람 잘 날 없는 동구의회다. 여당 의원 5명, 야당 의원 3명이면 쉽게 결판이 날 만도 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2년 전 같았으면 여당 쪽 좌장이 교통정리라도 맡아 주었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무주공산(無主空山) 격이다. 밖에서 보기엔 자리다툼, 밥그릇싸움, 이전투구로 비쳐지기에 딱 알맞다. 심지어 ‘노욕(老慾)’, ‘노추(老醜)’란 말까지 다 나오는 판이다. 중앙당의 계파싸움쯤 저리 가라다. 한 술 더 떠서 야당 쪽도 이해득실이나 명분을 따라 편이 갈려 있다니 가관이다.

“기초의회 없애야 한다는 소리, 저러니 안 나올 수 있습니까?” 단순히 호사가들만의 비아냥거림만은 아닌 것 같다. 의견이 분분하니 여론도 흉흉하다. “무슨 묘약 같은 건 없을까요? ‘신의 한 수’ 같은 것.”

그러던 차에 지난 24일 오후 동구에 단비가 내렸다. 안효대 전 국회의원이 오랜만에 정치고향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장막 안 소식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도 ‘신의 한 수’를 던졌을까, 이세돌처럼? 제발 그랬기를 바랄 뿐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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