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절차, 그리고 단계별 심화
형식과 절차, 그리고 단계별 심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6.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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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衛)나라 대부 극자성(棘子成)이 자공(子貢)에게 “군자란 실질만 유지하면 그만이지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자공은 그의 경솔한 말을 이렇게 나무랐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는 혀보다도 빠르지 못하다(駟不及舌). 실질이 형식과 똑같은 것이라고 하는 말은 호랑이 가죽이 개 가죽과 같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말을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초사(楚辭)에 나오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등장하는 어부(漁父)와 굴원(屈原)의 대화를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어부가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내다가 추방당한 굴원을 향해 넌지시 여세추이(與世推移=세상의 시류에 맞게 살아가는 것)로 살면 되지 않겠느냐며 마음을 떠 봤다. 이 말에 굴원은 ‘호호지백(皓皓之白)과 세속지진(世俗之塵)’(=公私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은 흑백과 같아 단호하게 다르다고 대답했다. 형식과 절차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가 있다. ‘나탈리 우드’가 주연을 맡았는데 그때부터 그녀의 팬이 됐다. 1920년대 미국 캔자스의 작은 마을과 고등학교가 무대인 이 영화의 큰 줄거리는 이러하다. ‘잘 생긴 부잣집 청년 버드(워렌 비티 役)는 여학생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소녀는 아름답고 착하고 모범적인 윌마(나탈리 우드 役)였다. 한창 혈기왕성한 버드는 윌마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윌마는 이를 거절한다.’ 영화에서 윌마가 던져준 메시지는 ‘육체적 관계는 결혼식이라는 형식과 첫날밤이라는 절차를 지켜 허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상의 예문은 형식과 절차 그리고 단계별 심화의 중요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제시했다. 자료를 검색하다가 ‘철새 홍보관·전망대, 위치·필요성 재검토해야’(2016.5.10.경상일보)라는 사설을 읽게 되었다. ‘(가칭)삼호 철새마을 조성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첫 용역 보고회’에서 의견을 제시했던 터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내용을 일부 인용해보자. “…하지만 이번 보고회에서 제시된 홍보관과 전망대는 생태관광을 유도하기에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전망대 위치를 보면 삼호동을 철새마을로 지정할 것을 전제로 해서 세운 계획이기 때문이겠지만 적절한 위치라 하기는 어렵다. 우선 백로의 쉼터인 대숲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백로의 서식처를 위협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정책입안과 용역 과정에서 지역 수요자의 숨겨진 욕구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되는 ‘기초자료의 분석’을 너무 소홀하게 다룬 것 같았다. 철새가 방점인데도 백로류·까마귀류에 대한 빅 데이터(Big Data)의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했고,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자유로운 토론으로 창조적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일)의 기회도 놓쳤다. 또한 수년전의 용역 자료를 수년째 인용, 반복 활용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탓에 근년의 현장 철새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생물다양성 탐사’를 매년 실시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다양성 변화의 확인을 통한 정책수립 자료의 활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년이 지난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현황 파악이나 정책입안 과정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용역결과 첫 보고회 때 ‘기초자료 활용’의 가치성을 강조했으나 그 의미와 중요성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 후 ‘철새마을 조성’ 중간보고회 때 같은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지난 10일 남구 ‘정부3.0 국민디자인단’ 모임에서도 다시 한 번 거론했다.

‘전문가’란 특정분야의 일에 관한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말한다. ‘전공자(專攻者’)란 더 나아가 어떤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정책입안자나 용역실행자는 ‘전문가’ ‘전공자’를 제대로 분별하는 안목을 갖출 필요가 있다. 또 정책 초기에는 ‘전공전문가’의 자문을 먼저 듣고 정책을 입안한다는 기본 원칙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공급자 입장에 있는 정책입안자는 수요자에게 따라오도록 강요하기보다 전문가와 전공자의 자문을 경청하고 간언(諫言)의 공사(公私)를 제대로 구분해서 향도(嚮導)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정책을 입안하기 전에 수요자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아이디어를 제공받아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자칭 전문가’가 주관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정책입안 과정서부터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자연과학에서 빅 데이터(Big Data)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것이 객관적 자료이기 때문이다. 지난 21일의 최종보고회에서는 제안자들의 다양한 논의를 반영해 타당한 결론을 적절하게 이끌어냈다는 생각이다. 다만 방점을 찍어야 할 ‘철새’에 대한 접근이 다소 미흡했던 것은 옥에 티였다. 당면 정책의 실천과 향후 지속가능한 발전을 생각한다면 방점이 되는 기초자료의 활용이 기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제언과 지적은 목적 달성을 위한 콜로키움(Colloquium) 같은 것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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