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라포드의 역설
테트라포드의 역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6.19 1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근자에 겨우 알았지만 ‘테트라(tetra-)’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남미 열대우림에 사는 민물고기’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어로 ‘숫자 4(four)’란 뜻이다. 후자에서 가지 친 병명(病名) 중에 ‘테트라 아멜리아 증후군’(tetra-amelia syndrome)이란 게 있다. 사지(四肢) 즉 두 팔과 두 다리 없이 태어난 사람을 얘기할 때 쓰는 병명이다. 이 병을 숙명처럼 안고 태어난 유명인사 2인이 있다. 일본인 히로타다 오토타케(乙武洋匡, 39)와 세르비아계 호주인 닉 부이치치(Nick Vujicic, 33)가 그 주인공. 두 양반 다 의지의 사나이이자 일본계 여성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보도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빙판처럼 갈라지고 있음을 전해 준다.

베스트셀러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 1998)의 저자 오토타케는 지난해 말 20대 후반의 여성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한 주간지의 폭로 내용을 부인해오다 지난 3월 백기를 들고 사죄한다. 2남 1녀까지 낳아준 대학후배 아내(仁美)에게 용서를 구하면서도 불륜상대가 5명이었노라 자랑삼아 떠벌리기도 한다. 이를 보도한 매체는 그 말미에 “반면 작가 닉 부이치치는 순탄한 가정생활을 꾸리고 있다”고 적는다. “닉 부이치치는 지난해 8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 저희는 두 번째 아이를 맞이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아이의 사진을 게재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여하간, ‘테트라’는 그 뜻이 ‘넷(四)’이란 것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귀에 한참 익은 ‘테트라포드’(tetrapod)의 뜻은? 어떤 이는 ‘네발짐승’으로 풀이한다. 사전상의 뜻풀이는 ‘중심에서 사방으로 발이 나와 있는 콘크리트 블록. 프랑스에서 발명한 것으로, 방파제나 강바닥을 보호하는 데 쓰인다’로 나와 있다. 또 ‘한국해양대 선박항해용어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소파(消波)를 위해 피복석 대신 사용하는 콘크리트 이형(異型) 블록으로, 4개의 뿔 모양으로 생겼으며 방파제나 호안 등에 사용되어 파랑 에너지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어 “프랑스의 Neyrpic사에서 1949년에 개발한 이 콘크리트 이형 블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며 네 가지 특징을 든다. 하지만 모두 장점만이다. ‘피복층이 거친데다 투과성이 좋아 파(波)의 에너지를 감소시키고, 블록은 서로 맞물려 안정한 급경사의 비탈면 시공에도 사용되고, 콘크리트 블록보다 무게가 가볍고, 시공할 때 특별한 주의가 필요 없다’는 것.

설명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간과한 것들이 있다. 테트라포드의 ‘위험성’과 ‘탈정서(脫情緖)성’이다. 특히 그 위험성은 최근에도 잠잠할 날 없는 실족 사고들이 너끈히 증명해 준다. 울산제일일보 기자가 ‘사람 잡는 테트라포드’란 제목의 기사에서 몇 가지 구체적 사례를 예시했다. 지난 10일 밤 9시50분쯤 동구 방어진등대 근처에서 낚시하던 A(37)씨가 7m 높이의 테트라포드 아래로 떨어져 골반 뼈를 다쳤다고 했다. 낚시를 하다가 혹은 사진을 찍다가 테트라포드에서 미끄러져 다친 사례는 그 밖에 수도 없이 많다고도 했다.

보다 못한 울산시가 움직였다. 예산을 들여서라도 사고를 막겠다며 지난 3월 2개월짜리 ‘지방어항 안전난간 설치 공사’에 나선 것. 그러면서 “틈새가 많고 이끼가 끼어 미끄러운데다 파도로 약해진 부분이 내려앉을 수 있어 안전사고 발생률이 높다”며 낚시꾼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하지만 테트라포드가 지극히 ‘생태친화(生態親化)’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는 이는 아직 본 적이 없어 유감이다.

몇 달 전 북구 몽돌 해안과 맞닿아 있는 주상절리 해변에서는 ‘소파(消波)’를 한답시고(=파도를 잠재운답시고) 테트라포드로 쌓고 에워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희귀한 관광명소를 돈까지 들여가며 흉물스럽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도 어느 누구 하나 안타깝게 여기는 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메마른 정서, 탈정서의 이 역설(逆說)을 언제쯤 끝장낼 수 있을까 하고.

<김정주 논설실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