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정체성 살아 있는 여유의 나라
국민 정체성 살아 있는 여유의 나라
  • 김은혜 기자
  • 승인 2016.06.1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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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핀란드
▲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있는 ‘성바실리 성당 ’. 높낮이와 모양이 서로 다른아홉개의 양파 모양 지붕으로 구성됐다. 이반 대제가 몽고군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고, 1561년 성당이 완성되자 아름다운 성당은 두 개가 될 수 없다며 설계자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연찮게 북유럽을 견학할 기회가 생겼다. 무려 9시간이나 비행해야 하는 북유럽은 그야말로 ‘막연’ 그 자체였다. 해외여행은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일본이 전부였기에. 그저 북유럽 하면 떠오르는 건 ‘눈’과 ‘복지’가 전부였다. 게다가 북유럽은 동·서유럽보다 여행 정보도 적어서 그 나라의 분위기를 상상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여행길에 오르기 하루 전날까지도 덤덤했다. 짐을 챙기는 동안에도 여행에 대한 설렘은 타오르지 않았다. 북유럽으로 떠나는 아침 해는 떴고, 하늘 길에 올랐다. 그렇게 상상하지도 못했던 ‘황홀한’ 12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러시아 문화의 정수가 모인 ‘모스크바’

 

▲ 겨울궁전의 가장 화려한 방. 겨울궁전은 연한 연둣빛 외관에 흰 기둥이 잘 어울리는 로코코 양식의 궁전으로 현재는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첫 목적지는 러시아 모스크바다. 인천에서 비행기로 9시간이 걸린단다. 공항에서 탑승수속을 밟고 나니 이제야 여행이 시작됐다는 기분이 든다. 가슴 속 깊은 곳이 ‘찡’하고 차가워진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공항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오후 1시35분 비행기가 이륙한다. “기내 사육 시작이다.” 옆 좌석에 탄 사람의 말이 ‘빵’ 터지게 만든다. 설마 그럴까 했는데. ‘아’! 그런데 2시간짜리 영화를 3편이나 봐도 아직 도착을 안 한다. 기내식도 두 번이나 먹었는데. 9시간 비행이 진정 ‘사육’이라는 걸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기나긴 비행이 끝나고 러시아 모스크바 세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4시50분. 한국 시간으로 오전 12시27분. 9시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햇빛이 쨍쨍하니 기분이 묘하다.

5월의 모스크바는 곳곳에 개발이 한창이었다. 2018년 모스크바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지라 축구경기장을 새로 짓고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반가운 건 현대·기아차가 많다는 것. 10대 중 6대 정도가 한국산 자동차였다. 삼성 휴대폰을 알리는 커다란 광고물도 눈에 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심이 절로 생긴다는 말이 참말로 와 닿는다.

모스크바에서 첫 일정은 크렘린궁전 관람이었다.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요새’를 의미한다. 크렘린 안에는 15세기 장대한 교회에서부터 현대적인 의회까지 다양한 건물이 있다. 레닌과 스탈린, 고르바초프가 여기서 서기장으로 활동을 했다. 크렘린 궁전을 비롯해 높이 2천235m에 이르는 크렘린의 망루, 표트르 대제 때 만들어진 바로크 양식의 궁전, 우스펜스키 사원,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인 황제의 종 등 러시아 문화의 정수가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 문을 지키는 우리나라에서 헌병 정도 되는 군인은 나라에서 깐깐하게 선발해 세워둔단다. 체력, 학문 수준, 심지어 외모까지 본다고. 러시아의 요새를 지키는 일이니 그럴만도 하다.

모스크바 여행하면 빠질 수 없는 곳은 붉은 광장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흔히 ‘테트리스 성’이라고도 불리는 성 바실리 사원이 있고, 러시아 최대의 국영백화점인 ‘굼 백화점’이 있는 곳이다.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뜻이다. 현재는 붉은 이라고 해석되지만, 고대 러시아어로는 ‘아름다운’, ‘예쁜’이라는 뜻이었다고. 혁명 기념일에 붉은 색의 현수막이 국립역사박물관과 굼 백화점의 벽에 걸리고 사람들도 붉은 깃발을 손에 들고 있어 광장이 온통 붉은 색이 됐다는 데에서 명칭의 유래를 찾기도 한다.

모스크바에서 마지막 일정은 아찔하게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모스크바 국립대학 앞 광장에서 기자는 호구(?) 관광객이 됐다. 현지인이 하얀 비둘기 몇 마리를 몸에 올린 것이 신기해 감탄하고 지나가는데 갑자기 비둘기를 기자의 몸에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카메라를 가지고 가선 사진을 마구 찍고 있었다. 어리둥절하며 포즈를 취하고 나니, 느닷없이 500루블을 달라며 돈을 요구한다. 유로화밖에 없던 터라 유로를 내미니 무조건 러시아 돈을 달란다.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친절하던 현지인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머니! 머니!” 외친다.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오른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러시아 돈을 가지고 있던 가이드와 일행들 덕분에 돈은 지불했지만(500루블보다 적게 지불했다), 당황스러움은 가시질 않았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가이드가 말하길, 러시아에선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호객행위가 잦고 나라에서도 이를 강력하게 제재하지 않는단다. 그런데 이 호객행위를 거절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사진을 찍고 혹은 찍히고, 마음에 안 들면 지우면 그만이란다. 모스크바에서 큰 깨달음 얻고 간다.

 

▲ ◀여름궁전.러시아 황제와귀족이 여름을 보내던 곳이다.20여개의 궁전과 140개의 화려한 분수들,7개의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돼 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에서 이틀을 보낸 뒤 비행기를 타고 ‘물 위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했다.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이 곳은 1703년 표트르 대제가 지은 곳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에는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시절에는 레닌그라드, 1991년 공화국으로 다시 거듭나면서 명칭이 과거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회귀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첫 일정은 러시아의 베르사유라고 불리는 ‘여름궁전(페테르고프)’이었다.

‘여름궁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였다. 자연경관과 어울려 잘 보존된 덕분에 여름궁전의 사방은 온통 파랗고, 푸르며, 빛이 났다.

핀란드만 해변가에 위치한 이곳은 러시아 황제들의 가족들과 귀족들이 여름을 보내던 곳이다. 1천ha가 넘는 부지에 20여개의 궁전과 140개의 화려한 분수들, 7개의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돼 있다.

삼손이라고 불리는 대분수와 예술품과 같은 다양한 분수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는 어쩐지 수상한 분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바닥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분수인데, 사람이 분수 안으로 들어가면 자동으로 물이 솟아올랐다. 천진난만하게 분수 위를 왔다 갔다 하며 이를 신기해하고 있는데, 분수 뒤편으로 수상한 할아버지가 보인다. 알고 보니 분수가 자동으로 솟아오르는 건 할아버지가 조정하는 것이었다. 이 할아버지의 연기력이 한 몫 했다. 우리 일행이 ‘이제 알겠다’며 싱긋 웃으며 쳐다보자 그는 ‘나는 그저 벤치에 앉아 쉬고 있을 뿐’이라는 얼굴로 평온하게 앉아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두 번째 날은 ‘겨울 궁전’이었던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 관람으로 시작했다. 연한 연둣빛 외관에 흰 기둥이 잘 어울리는 로코코 양식의 이 궁전은 1762년 라스트렐리에 의해 건축됐다.

이날은 러시아 전승기념일이어서 전쟁에 참전한 조상들의 넋을 기리는 범국민 행진이 이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조상의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목적지 없이 거리를 걸으며 추모했다. 추모였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TV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각자의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지만, 이들이 모여 하나의 문화가 됐다. 배울만한 좋은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여유로운 ‘파란 나라’ 핀란드

 

▲ 그핀란드 헬싱키대성당과 알렉산드로 2세.알렉산드로 2세는 핀란드를 통치했던 러시아 왕으로, 핀란드어를 국어로 인정해주고 어진 정치를 펼쳐핀란드인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러시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핀란드로 향했다.

우리에게 핀란드는 자일리톨 껌으로 친근한 나라다. 게다가 핀란드는 좋아하는 영화 ‘카모메 식당’ 의 배경이 된 곳으로 기자에게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핀란드 일정은 반나절 밖에 안 됐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핀란드에는 세계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만날 수 있는 공원이 있다. 말 그대로 시벨리우스 공원이다. 조각가 에이라 힐튜넨이 1967년 만든 파이프 오르간 모양이 인상적이다. 24t의 강철로 만들었다고. 파이프 오르간 옆에는 시벨리우스의 얼굴 조각상이 있다. 자연경관과 잘 어울려 좋은 공기 마시며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핀란드 필수 방문지로 꼽히는 또 다른 곳은 ‘암석 교회’다. 기존의 교회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암석 교회인데 교회 내부는 천연 암석의 특성을 살린 독특한 디자인으로 구성돼 있다. 암석 사이로 물이 흐르고 파이프 오르간이 이색적이다. 자연의 음향효과를 충분히 고려해 디자인 돼 음악회장으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고.
 

▲ 핀란드 헬싱키의 마켓광장. 현지 과일과 의상, 물품을 판매하는 포장마차가 모여있는 유럽식 포장마차 거리다

모든 관광지가 그렇지만 이 교회에서는 특히 큰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큰 소리를 한 번 쳤다가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만다. ‘쉿’ 하는 제스쳐와 함께.

헬싱키 시내 중심부에는 ‘원로원 광장’이 있다. 여기에는 알렉산드로 2세 동상을 중심으로 루터란대성당(헬싱키대성당)과 정부 청사 등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알렉산드로 2세는 핀란드를 통치했던 러시아 왕이다. 비록 러시아 왕이지만 핀란드어를 국어로 인정해주고 어진 정치를 펼쳐왔기 때문에 핀란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왕이라고 한다. 침입 당한 굴욕적인 역사를 기억하자는 뜻으로 동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광장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여유롭고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관광객들만큼 헬싱키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항구 앞에는 헬싱키에서 명소로 꼽히는 마켓광장이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물품을 파는 포장마차가 밀집돼 있는데 유럽식 포장마차 거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판매하는 ‘무이꾸’ 라는 간식은 싸고 맛이 좋아 현지인들이 맥주 한 잔하며 자주 사먹는다고. 우리나라로 치면 멸치볶음 정도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기자가 느낀 핀란드는 ‘파란 나라’ 였다. 파랑은 하늘과 바다를 떠올리게 해 평화롭고 여유롭다. 이 나라의 국기처럼 하얗고 파란 나라. 그래서인지 이 나라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삶에 여유가 있는 나라. 잔잔하고 여유로운 삶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지가 될만 한 나라다.

김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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