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을 달은 밝은데 길을 잃고 헤매다
대한민국, 가을 달은 밝은데 길을 잃고 헤매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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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독감 걸려 더러 눕는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가 또 있었던가 싶다. ‘나비효과’ 따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멀고도 가까운 나라 미국의 입김은 세긴 센 모양이다. 한가위란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은 예로부터 밥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풍요와 평온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번 한가위 전후를 보면 도리어 혼란스럽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기간이었고 그 후에 이어지는 일련의 징후는 자못 예사롭지가 않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은 물론 온전히 새로운 소식은 아니지만 막상 뇌졸중 운운하는 치명적인 징후의 보도는 한반도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을 긴장시키기에도 충분한 긴급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한반도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는 대폭풍의 징조이기에 다소 허둥대고 우왕좌왕하는 것도 일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위기나 불행은 결코 혼자 다니지 않는다고 했던가.

겨우 9월 금융위기설이 고비를 넘기는가 싶었는데 ‘국내 투자펀드 중국에서만 13조 손실’ 이란 잽에 이어 100년 금융기업 리먼 브라더스 파산신청, 미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 전격 매각, AIG보험사에 FRB(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850억 달러 긴급자금을 투입하는 등 잇따른 메가톤급 금융폭풍이 몰아치면서 우리증시에서 하루 새 51조가 빠지는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 여진의 파장을 예측조차 어렵다고 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IMF구제금융의 충격을 아는지라 기업하는 이들이나 대출 받아 집을 산 대다수 시민들의 가슴이 얼마나 콩닥대고 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러한 소용돌이이 속에서 미 FRB는 1천200억 달러를, 유럽중앙은행은 1천억 유로를, 일본은 2조5천억 엔을 금융시장에 긴급 투입하면서 발 빠른 대응을 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형편은 어떠한가, 그 위기설, 위기의식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데 있다. 국가와 국민에게 무한책임을 져야할 정부와 여당은 한가위 밝은 달빛 아래서도 길을 잃었는 듯싶다. 일사불란한 준비된 대책은 고사하고 서로 미루고 엇박자를 내고 있으니 이 험난한 파고를 어떻게 넘을 것인지 참 근심스럽다.

172석의 초유의 거대 여당은 파트너인 이명박 정부가 애원하다시피 조속히 통과시켜달라는 추경안 처리를 당 내부의 분열로 명분도 실리도 모두 다 잃고 예정 시한인 추석을 넘기고 말았다. 추경으로 MB노믹서 엔진에 기름을 부어 경기를 호전시키려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투자재원 확보는커녕 홍준표 원내대표의 거취문제로 옮아붙어 급기야 죽었던 파벌불씨가 되살아나는 국면이 되고 말았다. 이 판국에 경제총수는 이 상황이 ‘끝인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는 의미의 소신 없는 말로 혼란을 더하고 있다. 금융의 야전사령관격인 한은총재와 총리는 서로 스텝이 엉겨 불안만 더하고 있다. 산 넘어 산이다.

정치의 힘은 국민에게서 나오되 그 근본은 믿음에 있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우리 돈의 적정한 가치와 정상적인 흐름은 정부와 정치에 대한 신뢰가 그 담보물임을 모르지 않을 터인 바 정부와 여당의 실천을 담보로 잡고 싶다. 추석연휴를 고향에서 보내며. 그야말로 경향각지에서 온 갖가지 일을 하는 이들을 만났다. 쇠고기이야기, 종교분열 걱정, 월 1만원씩 내기로 하고 들어둔 낯 뜨겁기 짝이 없는 AIG 효도보험 부도날 걱정에 달이 기우는 줄을 몰랐다. 모두가 제가 제일 어렵다고들 했다. 다만 우리 의견이 오직 하나 된 것은 위기를 느끼는 것도 어려움을 당하는 것도 공직자들이 제일 나중이라는 것이었다. 정부사람들도 의정공직자들도 귀를 열었으면 좋겠다.

/ 박기태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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