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골프를 치는데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고, 한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어서 분위기가 여간 경색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 높은 사람의 드라이버 실력이 아직 초보자 수준이어서 조심스런 분위기이었다. 그래서 더욱 더 신경이 쓰여 골프 치는 사이사이에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골프라는 것이 항상 잘 못되는 것만 아니다. 잘 될 때도 있다. 어느 홀에서 그 높은 사람이 드라이버를 잘 쳤다. 공이 멀리 잘 날아가고 있었다. 순발력 있게, ‘이때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큰 소리로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배를 움켜쥐는 척 하면서 잔디밭에 주저앉았다. 모두들 깜짝 놀란 것은 당연했다. 모두들 둘레에 모여 섰을 때,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지 않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이 드라이버를 잘 치면 금방 배가 아파와요.’ 모두들 그 높은 사람을 보고 껄껄 웃고서, 그때야 ‘굿 샷 !’을 외치며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우리의 시기심(猜忌心)을 잘 나타낸 말이다. 흥부의 선행을 놀부가 시기심으로 못 참는 것이 놀부의 심술이다. 하청업체에 근무하는 친구가 나보다 수당을 더 받는다고 하니까 배가 아파서 무엇이든지 반대부터 하고 본다.
아직 울산의 외국어 고등학교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시작도 못하고 있는데, 서울의 영훈중학교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국제 중학교 설립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허락이 있어 개교를 하려는데 ‘배 아픈 사람들’이 많아서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꼭 촛불시위 주동자들이 뒤에 숨어 조종하듯이,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교육 선봉을 꺾으려는 면도칼 사나이 졸개들이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
배 아픈 사람들은 옆에서 누가 조금만 거들어 주면 활개치고 나댄다. 어느 교수도 남 잘 되는 것을 못 보며 배가 아파하기 때문에 그 속을 아는 둘레 사람들은 그를 ‘면도칼은 숨기고 입으로만 OO하는 위선자’자라고 한다. 이런 행동을 정신과 의사 이동식은 ‘내가 나를 인정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입학시험 경쟁이 심하여 일류, 이류, 삼류, 기타로 분류되던 시절에 삼류의 학생들은 정신건강하게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는 이런 정도이다’로 사회활동에 적응하며 동참하였다.
지금은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도 결과가 같아야 하는 배 아픔의 병이 만연해 있다. 불공평의 시대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