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이번 페스티벌의 성과는 폴란드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목판화계와 유럽의 목판화계의 교류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대부터 서책 인쇄의 방법으로 목판화가 발전해왔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진술과 함께 인쇄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대량 인쇄를 위한 목판화의 기능은 소멸했다. 중국과 일본의 미술계에서는 일찍부터 목판화의 예술성에 주목하면서 목판화가 미술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중국에서는 ‘아큐정전(阿Q正傳)’의 저자로 유명한 루쉰(魯迅)이 1931년 신흥목각운동을 주도하면서 현대목판화의 장이 열렸다.
일본에서는 에도(江戶)시대(1603~1867)에 이미 예술성을 지닌 우키요에(浮世繪)라는 이름의 목판화 작품들이 성행한 전통이 있어 일찍 현대미술의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조금 늦은 해방이후에 현대목판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의 목판화는 근원이 같으면서도 한국과 중국, 일본이 각기 독자적인 발전과정을 거쳤다.
이런 동아시아 목판화계가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연 것이 바로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작가들이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각국 목판화계의 경향을 한 장소에서 살필 수 있었다. 페스티벌에 다녀갔던 외국 작가들은 우리나라 작가들을 자국의 전시회에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현대목판화협회 김억 회장이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있는 후베이미술학원 교환교수로 부임하기에 이르렀다.
2014년 제3회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이 대학 장광후이(張廣慧) 교수가 그 때의 인연으로 한국 작가들을 우한에서 열린 국제판화교류전에 초대한데 이어 김 회장을 교환교수로 초빙한 것이다.
올해 페스티벌에는 폴란드 작가 4명이 8 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얀 파뮬러(Yan Pamula) 크라쿠프 미술대학 명예교수와 크슈스토토프 슈마노비츠(Krzysztof Szymanowicz) 마리퀴리 스쿼드프스카 대학교(UMCS) 예술대학 학장은 폴란드 작가들을 대표해서 직접 전시장을 둘러봤다.
유럽은 동아시아와는 근원을 달리하는 목판화를 발전시켜 왔다. 유럽의 작가로서 동아시아 목판화 작품들을 한 장소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그들은 이 페스티벌에 관한 정보를 자국에서 열리는 목판화 트리엔날레에 상세하게 보고하겠다고 했다.
유럽과 동아시아 목판화의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목판화 단일 장르로 열리는 국제전시행사는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이 유일하다. 이 페스티벌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쪽은 일본 목판화 작가들이다. 국제목판화계의 주도권을 한국에 넘겨 준 것 같아 속내가 편치 않은 표정이 역력하다. 제1회와 제2회 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 3년 만에 다시 참가한 일본 다마(多摩)미술대학의 고바야시 게이세이(小林 敬生·72) 명예교수는 “울산국제목판화 페스티벌에 참가한 작품들의 수준이 놀랍게 발전했다”며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의 목판화계와 소통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페스티벌인 만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일본 작가들도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번 페스티벌을 준비한 김동인 운영위원장은 이 페스티벌을 국제 공모전 형식으로 발전시켜 울산을 세계 목판화 예술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울산은 이미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걸출한 문화 콘텐츠를 확보했다. 이 페스티벌을 울산의 대표 문화행사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남은 과제다.
<강귀일 취재2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