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노(垂老) 떼까마귀의 다이어리
수노(垂老) 떼까마귀의 다이어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6.0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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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떼까마귀입니다. 갈까마귀와 친구로 함께 살아가는 겨울철새입니다. 10년 넘게 울산 삼호대숲을 겨울 잠자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매년 10월 중순에 와서 이듬해 4월말에 돌아갑니다. 작년의 경우 10월 15일 기로(耆老)층 13명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 후 100명씩, 천 명씩, 수천 명씩 나누어 차례로 도착해서 11월 말부터 모두 5만 5천명이 울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기로층이 젊은 무리보다 먼저 온 이유는 분명합니다. 노쇠하여 젊은 무리와 함께 오기에는 힘들 것 같아 번식지에서 며칠 앞서 채비를 하여 출발한 것입니다. 도착하니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9월 8일에는 일본 효고현에서 방사한 황새가 태화강 하류 동천 합수지점에 날아왔다는 소식도 접했습니다. 9월 12일에는 생물 분야 권위자들과 아마추어 일반인이 함께 모여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생물종을 찾아 목록으로 만드는 과학 참여 활동인 ‘바이오블리츠 한국 2015’(BioBlitz Korea 2015)가 울산 태화강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10월 8일에는 2003년부터 시작해서 12년째 돌아오게 된 태화강 연어가 올해에는 지난해(2014년)보다 7일가량 빨리 돌아왔다는 소식도 접했습니다. 10월 20일에는 오전 7시 태화강과 동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국제보호조류인 천연기념물 제199호 황새 한 쌍이 발견된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에서 날아온 야생 황새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다시 해가 바뀌어 1월 29일부터 31일까지는 중구 태화강 둔치에서 ‘2016 떼까마귀·갈까마귀 군무 페어’라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 기간에는 ‘다큐3일’ 촬영 팀의 밀착취재도 있었습니다.

2월 1일에는 일본 관광객 50명이 우리의 군무를 보려고 울산을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이른 아침에 먹이 터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일제히 ‘스고이’라고 외쳤습니다. 2월 21일에는 ‘2016 떼까마귀·갈까마귀 군무 페어’ 행사 기간에 KBS 2TV가 72시간(3일) 밀착취재했던 결과물을 다큐3일 <도시, 새를 품다-울산 태화강 까마귀 군무 72시간>이란 이름으로 방영했습니다. 울산의 생태환경을 전국에 홍보한 셈입니다.

2월 24일에는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전국 200개 철새도래지에서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울산 태화강의 겨울철새 증가율은 ‘전국 최고’라는 것입니다. 또한 울산 태화강의 겨울철새는 전년 대비 66.8% 증가한 10만1천420마리가 발견됐으며, 떼까마귀 개체 수는 전년에 비해 75.4%나 급증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3월 7일에는 태화강에 황어가 올라왔습니다. 지난해보다 일주일 빨리 찾았다고 했습니다. 3월 11일에는 볍씨를 뿌려주어 춘궁기의 배고픔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울산에서의 생활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먹이 터를 찾아서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가까운 입암들부터 경주 안강들까지 논경작지만 있으면 찾아갑니다. 논경작지에는 우리의 주식인 낙곡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질녘이면 삼호대숲 근처 태화동, 무거동, 다운동으로 모여듭니다. 다시 모여 잠자리로 들어갑니다. 현재 삼호대숲에 잠자리를 마련하여 8개월째 살고 있습니다. 동료들은 고희를 넘어 산수(傘壽)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환귀본토(還歸本土)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월 15일에는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에 태화강가에 세워진 ‘태화강 생태관’ 개관식에도 가보았습니다.

4월 14일에는 지난 3월 달에 수거한 펠릿 1천g을 분석한 결과 소화되지 않은 벼와 씨앗 12g(1.2%), 벼 껍질 649g(64.9%), 돌 320g(32%), 소화되지 않은 물질 19g(1.9%) 등으로 구성되었다는 자료를 보았습니다. 결과를 통해 우리 떼까마귀의 주식이 볍씨임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주신 분에게 새삼 감사를 드립니다. 4월 15일에는 울산시가 ABF 집행위원회가 ‘2017년 아시아 조류박람회(ABF:Asia Bird Fair)’를 울산시 태화강에서 개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4월 19일에 우리네 떼까마귀와 갈까마귀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울산시, 올해 벼 재배면적 154㏊ 줄인다(2016.4.19.울산매일)’는 깜짝 놀랄 소식이었습니다. 후손들이 걱정입니다.

백로의 개체수가 증가하는 4월 말입니다. 간간이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발아래는 털빛바랜 늙은 너구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닙니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모양입니다. 왠지 횃대를 잡은 발가락에 힘이 빠집니다.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어지럼이 더해 옵니다. 순간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이쪽저쪽 가지에 부딪히면서 떨어졌습니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집니다. ‘왝 왝 왝’ 왜가리의 울음소리가 ‘복(復) 복(復) 복(復)’ 초혼으로 들립니다.

‘수노(垂老) 떼까마귀’란 나이가 많은 노년의 떼까마귀를 상징적으로 이른 말입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뭄·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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