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참선’ 골프
‘서양식 참선’ 골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5.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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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은 불교의 수행법 중 하나다. 화두(話頭)를 일념으로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불교의 참선법)을 말하며, 중국에 불교를 전한 달마 조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좌선(坐禪)’이란 용어가 있긴 해도 참선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자세로 해도 괜찮다. 많은 사찰들이 승려의 전문 참선장소인 선원(禪院)을 운영한다. 여름에는 하안거(夏安居), 겨울에는 동안거(冬安居)로 정진한다.

골프(golf)는 크게 티 그라운드(teeing ground), 페어웨이(fairway), 퍼팅그린(putting green)으로 불리는 3대 구역에서 공을 치고 걸으면서 즐기는 스포츠다. 1998년 US 여자오픈 경기 당시 물에 빠지기 직전의 공을 치려고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리던 박세리의 모습이 생생하다.

참선과 골프에는 공통점들이 있다. 한 번에 이루어지는 깨침과 홀인원도 그 중 하나다.

참선의 매력은 깨침인 오도(悟道)에 있다. 납자(衲子=납의衲衣를 입은 승려)는 화두에 윤집궐중(允執厥中)해야 화두타파(話頭打破)되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한다. 그 순간에는 ‘와지일성(?地一聲)’ 같은 오도성(悟道聲)을 낸다. 오도송(悟道頌)은 참선 끝에 진리를 깨닫고 지은 노래(詩歌)다.

골프의 매력은 한 번 친 공이 그대로 홀컵에 빨려 들어가는 홀인원에 있다. 골프는 적중(的中)하고 정곡(正鵠)을 맞춰야 환호성(歡呼聲)이 터진다. ‘장타’ ‘나이스 샷’ ‘홀인원’ ‘파 퍼트’ ‘버디 쇼’, ‘홀 인’ ‘홀 아웃’ ‘싱글’ 등 다양한 단어는 모두 골프와 관련된 표현이다.

참선과 골프의 공통점은 유혹에도 있다.

참선의 최대의 적은 망념(妄念)과 수마(睡魔)의 유혹이다. ‘한평생이 며칠이나 된다고 정진 수행하지 아니하고 게으름을 피우는가(一生幾何 不修放逸-원효: 발심수행장)’라는 말은 지속적인 정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골프의 최대의 사탄은 속임수로 타수를 줄이려는 유혹이다. “2년 전 로스앤젤레스 근교에서 트럼프와 골프를 쳐 보니 공이 물에 빠지거나 OB가 나면 티샷을 다시 하고, 페어웨이나 홀 가까이에 슬쩍 공을 놓는 속임수를 쓰더라.” 이 말은 프로복싱 6체급 세계타이틀을 갖고 있는 오스카 델라 호야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를 두고 한 말이다. 골프는 대회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심판 없이 즐기는 진실한 놀이다. 수좌(首座)에게 망념과 수마가 적이라면 골퍼(golfer)에게 배려와 겸손은 멋이다. 수좌가 망념과 수마를 이기는 것은 능력이고 골퍼가 배려와 겸손을 발휘하면 매력이다.

지난 21일 영축총림 통도사를 비롯한 7대 총림과 전국 102개 선원에서 수천 명의 납자들이 하안거에 들었다. 앞으로 89일간 산문(山門) 밖 출입을 가급적 삼가며 화두를 궁구한다. 석 달 동안 육의 욕망, 눈의 욕망, 혀의 욕망 등 교만과 자만을 내려놓고 법과 공에도 집착하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정진한다. 석가는 6년 고행, 달마는 9년 면벽공부(面壁工夫)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석가는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교화했고 달마는 수행법을 전했다.

130번째 출전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우승한 선수는 김해림이다. 김해림의 첫 우승은 프로골프 입문 9년만의 경사다. 공교롭게도 달마 대사가 공부한 9년과 그 기간이 같다. 세상의 모든 일은 쉽게 되지 않는다.

참선의 깨침과 골퍼의 홀인원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참선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방법이지만 깨달음이 궁극의 목적은 아니다. 깨달음을 실천해야 비로소 목적을 달성한다. 참선하다 죽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참선에 정진하여 깨쳐야 한다. 그리고 그 깨침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죽어야 한다.

골퍼는 홀인원에 환호성을 지르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경영인, 사업자 등 전문직 오너 들이 즐기는 골프는 심신을 건강하게 하여 지역경제 혹은 나라경제를 발전시켜야 비로소 목적을 완성한다.

결제(結制=하안거나 동안거 첫날에 행하는 의식)한 그날 입선(入禪)에서 달맞이꽃이 소리 내어 피듯(달맞이꽃은 피는 순간 눈으로 느낄 만큼의 속도로 핀다) 많은 선방에서 오도송(悟道頌)이 범종소리같이 사방으로 은은하게 울려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한 타에 홀인원의 깨침이 있어 중생에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중생심이 어찌 한 타 만에 불심으로 되겠는가? 오직 정해진 구멍에 타수를 줄이면서 골프공을 넣어야 하는 골프나 화두를 타파하는 납자는 궁극적으로 같은 결과를 도출하고자 노력한다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참선은 멋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한 화봉(華峰, 1902-1975)스님같이 골프도 배려와 겸손의 멋을 찾아가는 스포츠다. 골프를 서양식 참선이라 말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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